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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번역/글

[Thor/번역] 거래(12)

쿠밀 2017. 12. 3. 17:14

※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


원문: Barg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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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Bargaining





written by proantagonist

translated by windmill





chapter 12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었지만, 첫 기억은 눈이었다. 


하늘에서는 눈이 흩날렸고 다른 아이들이 웃으며 눈송이를 잡기 위해 손을 내뻗는 걸 보면서, 그의 배는 허상 같은 격렬한 굶주림에만 뒤틀리고 목은 설명할 수 없는 갈증에 타들어 갔던 기억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고 눈이 그에게 속삭이는 것을 그 어떤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겨우내 제 형의 온기를 가까이하고 어슬렁거리던 이유를 그에게 말했던 적은 없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터였다. 그래서 그는 정말로 비명 치고 싶을 때에도 거짓말하고 소리 내 웃는 법을 익혔다.




로키는 제 아버지가 증오스러웠다.


두 명 모두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더 증오스러운 쪽은 오딘이었다, 적어도 라우페이는 자신의 혐오에는 솔직했으므로.


약속한 일주일은 거의 끝나고 있었으며, 시간은 죄수들의 선고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로키가 오직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신에게 얼만큼이나 욕보일 수 있을까 뿐이었다— 그는 양아들이 저도 모르게 제 생부를 사형에 처할지도 모를 재판마저도 아주 기꺼이 참석해 지켜볼 작자였다. 재기 넘치는 조작이 아닌가. 경탄을 자아내는 농담. 로키조차도 특히 이 대목이 지니는 잔악함에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문득 오딘이 그에게 언제 이 사실을 얘기하려는지 너무나 궁금해졌다. 그는 지금만큼 이다지 아버지신이 싫어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오딘이 최근 들어 이다지 지혜를 넘겨주려고 열심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마치 다정하고 관심 가진 아버지라도 되는 양— 특히 로키가 모반을 꾀한 그 순간 오딘이 보호책을 얼마나 빠르게 앗아갔는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리 생각하기란 불가능했으며, 그마저도 가장 최악이었다.


로키는 제 인내심이 현재 바닥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때때로, 이 시간대로 돌아온 이유를 까먹기도 했다.


토르는 괜찮을 거다, 그렇게 혼잣말했다. 토르는 언제나 괜찮았다, 로키 그가 정신을 놓을 때까지도. 지금 모두를 내버려 둔다 해도, 모든 것이 괜찮을 거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로키가 죄수들에게 판결을 내리 전날, 만찬에서는 요툰헤임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대식당에는 법관들로 가득했으며 그들은 다가올 재판을 웃으며 기념했다, 분명 장광일 거라고. 로키는 형과 함께 앉았고, 그 주위를 토르의 친구들이 둘러쌌다. 바로 그 전사들이 죽이겠다고 맹세하던 그라는 괴물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분명했다. 그리고 이 역시 아버지신의 아주 훌륭한 농담 중 하나였다.


로키는 오딘을 쳐다보면서, 제 생부에게서 터득한 대로, 구태여 제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프리가는 남편의 오른편에 앉아, 짙어져 가는 경계의 눈빛을 로키에게 보냈다. 그녀가 말하기를 꺼리는 것인지 말할 수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딘이 로키가 부친 살해하는 것을 방치할 셈이라는 것을 그녀도 알았으며 제 아들을 향한 걱정은 아주 분명히 짙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편안한 미소를 띠고 있었음에도 수척했다.


(좋아. 저들을 애태우고 네가 증오하는 이유를 궁금하게 만들라고.)


(이게 바로 저들이 이 세월 동안 널 갖고 놀며 한 짓이었잖아?)


“포로 녀석들을 어떻게 할지의 결정은 아직이야, 로키?” 하고 팬드랄이 물었다. 그는 가까운 테이블에 앉은 숙녀들에게 제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알리듯 목소리를 키웠다.


이제 오딘이 깨어났으므로, 로키를 왕으로 호칭해야 하는 것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죽여야지.” 그는 조용하고도 꾸밈없는 어조로 말했다.


“네가 그런다면, 사절로서의 우리의 새로운 역할은 아주 간단해질 거다.” 토르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의 뺨은 술 때문에 루비처럼 붉었고, 말은 그다지 똑똑지 않았다. “영구 평화라는 것은 반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구축하기 쉬우니까.”


시프는 엄청난 두뇌 회전으로 눈을 굴리는 것과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로키는 감탄했다. “네 놈들 다 끔찍해.” 그녀는 음식을 집으며 말했다.


“요툰들에게 사형은 가혹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로키는 눈썹을 추어올리며 물었다.


“전사는 다른 나라로 쳐들어가는 그 위험성을 알고 있어.” 하고 시프는 말했다. “죽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야. 하지만 그 죽음을 비웃는 일이 영예롭다는 생각 안 해.”


토르는 포도주병에 대고 코웃음 쳤고, 그 호건마저도 빵을 찢으면서 미소를 흘렸다.


“미안하네, 시프.” 토르는 손등으로 입언저리를 훔치며 말했다. “그래 그놈들의 죽은 목숨이야말로 영예로운 것이지.”


그리고는 다시 마구 웃었다— 술 취한 몸을 볼스타그에게 기대었고, 그마저도 터지는 흥겨움에 몸을 맡겼다.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그 어느 이가 서리 거인더러 명예롭다고 하겠는가?


로키는 정찬용 접시에 올려진 포도를 한 알 따서 손가락 사이로 굴리며 유쾌하게 웃음 지었다. “그렇다면 그놈들이 어떻게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 형? 우리가 어린 날 맹세했던 대로, 칼로?”


그는 오딘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듣고 있다는 것도.


그가 듣보기를 원했다.


토르는 미끼를 물었고 동생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함께 베어버리는 거야. 우리의 힘 앞에서라면 그 어떤 괴물도 살아남지 않을 거다.”


“맞아, 그러면 홀들을 뒤덮고 있는 이 망할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볼스타그는 말하며 몸을 떨었다.


“냄새는 더하잖아.” 팬드랄이 덧붙였다. “더러운 짐승처럼.”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졌고, 로키의 웃음소리가 가장 크게 울렸다.


“그래, 그 녀석들이 좀 흉측해야지, 안 그래?” 하고 말하는 그의 눈이 가학적으로 춤췄다.


“추악한 짐승들.” 토르가 동의했다.


“그 눈.” 자극하듯 로키는 말했다.


“맞아, 악마들 같으니.”


“그 피부랑 문양들은 또 어떻고.”


“으음.” 토르는 크게 한 모금 들이키듯 병나발 불며 말했다. “비정상이지.”


“너희 둘 진짜 추잡해.” 시프가 말했다.


“우린 그냥 재미 좀 보는 거야.” 토르는 테이블 위로 술병을 쳤다. “미드가르드 이후로 넌 너무 심각해졌어.”


“그러는 너야말로 진지해지지 않은 거지.”라며 그녀는 성냈다. “배운 게 전혀 없구나, 너.”


“시프, 그 녀석들은 한밤중에 우릴 공격했어.” 토르가 말했다. “내 가족을 다치게 했지. 녀석들이 부리는 기만과 협잡은 더럽다 못해 불결해. 놈들은 이 나인 렐름의 수치야. 괴물에 불과하다고. 존엄도 충성심도 없어— 네 입으로도 그랬잖아, 라우페이의 아들들이 순식간에 제 아비를 배반했다고. 녀석들에게 이치 따져가며 설득해봤자 분명 다 헛수고일 거다, 선량함도 고결함도 놈들에겐 없으니까. 그런 녀석들은 내 동생이 쓸어버리는 게 나았어.” 하고는 그는 크게 웃었지만 그를 따라 웃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거나하게 취해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로키는 손을 뻗어 형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전율하는 애정을 담아서. “형이 내게 동의해줘서 정말 기뻐. 가족에게서 그런 편견 없는 생각들을 들으니 얼마나 안심되는지 몰라.”


그리고 그것이 다였다, 안에서 무너내리기 전 간신히 할 수 있는 말은. 스스로가 불러온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 결과는 그가 전장에서 받았던 그 어떤 타격보다 치명적이었다. 이는 제 형이었다. 이는 마침내 나온 진실이었다, 줄곧 그에게 집으로 돌아오라며 청하던 유일한 사람의.


로키는 대화가 계속 이어지며 홀 전체를 크게 울리는 것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눈사태를 부른 것이 자명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이 요툰에 대해 여과 없는 증오와 혐오로 따져댔다. 재판에 대한 갈망과 로키가 마땅히 사형 선고를 내릴 거라는 확신으로 떠들어댔다. 로키는 잠시 가만히 서서 그냥 이 모든 것을 아주 깊이 이해해 보았다.


토르도 제 동생을 따라나서려고 일어섰다. 하지만 묠니르에 손을 뻗었을 때, 미소는 빠르게 사라졌다. 그는 제 무기를 집어 올릴 수 없었다.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그 광경을 목도한 사람은 그들 말곤 없었다. 토르의 얼굴에서 경악 섞인 혼란이 퍼져나가자 로키는 단지 미소지으며 생각했다. (로키: 2. 토르: 0)


그리고는 충격에 새하얗게 질린 여왕 옆에 앉은 아버지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비웃어 주듯 몸을 까닥여 인사했다.


어쨌든, 이는 괜찮은 승리였으므로.




양친이 로키를 찾았을 때는, 그가 사실로 돌아가고 난 뒤였다. 그는 활짝 열린 창문 앞에 앉아, 분노에 온몸을 떨었다.


“로키.” 프리가는 입을 열었지만, 더는 이어가지를 못했다. 그가 알고 있음이 지독히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가요.” 로키는 증오로 가득 차 속삭였다.


오딘은 문을 닫았다. “네 어머니에게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말아라.”


로키는 몸을 돌려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녀가 제 어머니는 결단코 아니지 않으냐는 듯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프리가는 오딘의 팔을 지지대처럼 꽉 그러잡았다.


오딘은 그런 그녀의 손 위로 제 손을 포개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 아들. 알고 있는 것을 말해다오.”


광기에 가까운 웃음소리가 갑작스레 로키에게서 터져 나왔다.


“누가 네게 말해주었지?” 하고 오딘은 말했다. “라우페이더냐? 그는 거짓말쟁이다, 놈이 하는 말은 어느 것도 믿지 말아야 해.”


“맞아요, 아비란 거짓말쟁이가 말해주었죠.”라며 말하는 로키의 얼굴에는 여전히 입꼬리를 찢어 당길 듯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요즘은 주변에 거짓말쟁이가 정말 정말 많아져서 말예요. 때때로 누가 누구인지 나도 헷갈린다고.”


“설마.” 프리가가 말했다.“라우페이가 투옥된 동안 말했을 수도 있어 그렇지만, 하지만 형과 요툰헤임에 갔다 온 뒤부터 넌 행동이 이상했어. 내 아가, 우린 항상 네게 말하려고 했단다. 넌 우리 아—”


“아니죠, 여왕님.” 로키는 말했다. 미소는 변함없었다. “아니지, 그건 정말 아니지.”


“로키, 부탁이다, 진정하렴.” 오딘이 말했다.


“아, 나도 말이야, 진정하려고 했어요. 근데 한 번 터뜨리고 나니까 기분이 훨씬 좋아지는 거 있죠. 요즘은 당신을 증오하는 데 푹 빠져있다니까.”


“어째서냐?” 오딘은, 미끼를 물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아는 것을 말해다오. 증오하는 그 이유를 말해다오.”


“왕실의 서자 가장 나약한 요툰 새끼.” 로키는 소리 냈다. “척추가 기형인 채로 태어난 비극에, 죽도록 내버려 진 놈. 적에게 전리품으로 주워져 조종당하고 나중의 쓸모밖에 없는 놈. 내가 놓친 게 있나, 아버지신?”


오딘은 한동안 그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래.”


로키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눈을 찌푸렸다. “오, 아니지 이러지 마. 지금 내게 애정을 가진 척은 말자고. 당신의 마음속이 아주 훤히 보이니까. 거짓말하고도 뻔뻔스러운 당신의 태도에 경악할 정도야. 그것도 나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점에서.”


“난 널 내 아들로 삼았어, 그렇기에 너는 나의 아들이다.” 오딘이 말했다. “거기에 거짓이 어디 있느냐?”


“당신은 남을 조종하는데 대가였지, 그래.” 로키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지, 제일인자였군. 그렇다면 우리 이를 거짓말이라고 하지 말자고. 기만책 어때? 내가 에시르라고 생각하게끔 당신이 일부러 날 기만했으니까.”


“얘야 내가 널 안아 올렸을 때 넌 요툰의 모습이었다. 그 뒤 내가 기뻐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습으로 바꾼 것은 바로 너였어.”


로키는 웃음소릴 내려 했지만, 되레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오, 그래서 내 잘못이다? 날 기만한 것은 나고. 당신 둘은 아무런 간계도 쓰지 않았다. 이렇게 멋질 때가, 애초에 나란 녀석은 동정을 바라고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니. 이런 시각 알려 주어 정말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아버지신.”


“넌 굶주리고 겁에 질려 있었어.” 오딘이 말했다. “동정을 바라고 애정을 갈구하는 건 어느 아이나 그래. 그러니까 부모가 존재하는 거야, 아이들이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돌봐 줄 수 있도록. 그리고 아니다— 기만당하고 그것이 네 잘못이라는 의미가 아니었어. 이건 터무니없는 일이다, 로키. 넌 아스가르드의 사람이야. 넌 우리 아들이다. 그걸로 다다, 그만이다, 끝이야.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왜 이리 어려워하느냐? 네 반응을 난 이해할 수가 없구나.”


로키의 숨소리는 분노가 곧장 튀어나올 것처럼 거칠어졌고, 눈은 사납게 빛났다. “이해할 수 없다고? 난 평생을, 좌절과 분함 속에서 살았어, 절대로 될 리 없는 걸 얻으려고 했기 때문에. 될 수도 없었는데, 난 노력했어, 노력했다고,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정말로 마음이 두 쪽 날 때까지 노력했다고. 근데 내가 찾은 건 진실로 아무것도 아니란 거야. 그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고! 진짜로 당신 아들도 놈의 아들도 아닌. 에시르도 요툰도 아닌. 이 피부마저도 거짓이라는 정도는 너무 자명한 일이야, 본능적으로 나라는 존재가 증오스러우니까. 내 형이란 사람은 공개적으로 내 인종을 조롱하지, 그런데도 난 그가 한 모든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거야! 당신은 절대 이해 못 해 내가 한 짓을. 그건 나에게 너무 쉽거든, 이 안에는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니까. 난 괴물이야, 나란 존재라는 아주 뿌리 깊숙한 곳에서부터 괴물, 그리고 이 자리에서 죽게끔 당신이 만든 거지. 이는 전쟁 포로야, 궁전 아래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놈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아버지신, 당신은 날 거두지 말았어야 했어. 당신을 움직인 게 동정심이었다면, 차라리 우리 모두를 위해서 당신은 그 자리에서 그 발로 내 머리를 밟아 으깨야 했어.”


로키.” 프리가가 울먹였다.


“내 아들, 제발 그만 해다오.” 오딘이 그에게로 한 발짝 다가섰다. “넌 아무것도 이해 못 하고 있어.”


그 말에 로키는 그들에게 비명을 질러댔다. 더는 이 위선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내게 손대지마! 관심있는 척은 그만두지! 당신이 방치했어, 내가 떨어지도록 당신이 방치했다고!” 그는 한 번도 질러 보지 못한 사람처럼 소리쳤다. 목청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비명의 연쇄는 곧 끊어졌고, 그는 순식간에 제 울음에 숨이 막혔다. 제 흐느낌에 그는 몸을 굽히고 배를 고통스러울 때까지 부여잡았다. “당신이 날 떨어지게 했잖아, 당신은 날 잡으려는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어!” 그는 울었고 분노했다. 그들을 비난했으며,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려 하자 뒷걸음질쳤다. “난 당연히, 당연히 당신이 시도는 할 줄 알았어, 그래서 난 손을 놓았던 거라고 그 행동을 보려고. 하지만 당신은 그냥 지켜보기만 했지, 유감과 단념뿐인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만 보는 게 최선이라도 되는 양. 당신은 날 한 번도 원한 적 없었어, 당신은 날 제거할 수 있어서 안심이었지! 그러니 거기 서서 날 사랑하는 척은 그만두라고, 우리 둘 다 진실을 알고 있으니까. 이제부터 아버지 역은 그만둬도 돼. 난 당신을 증오해, 당신들 모두 증오한다고!”


그 순간, 문이 활짝 열렸고 날려간 문짝은 벽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토르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문간에 서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로키를 더욱 분노케 했다. “나가, 나가, 꺼져!


하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더 가까이 다가오며, 위협이 아니라는 것처럼 손을 들어 올렸다. 로키는 숨을 쉬거나 도망칠 수도 없었다. 저들이 제 앞을 막아섰다. 그는 머리칼을 움켜쥐고 미친 듯이 사방을 둘러봤다— 하지만 유일한 탈출구는 바로 제 뒤에 열려 있었다.


그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얼굴이 평온해졌다. 목 뒤로 신선한 공기가 부는 것을 느꼈다. 자유. 그는 몸을 돌렸고, 안도감에 애처로이 웃음을 터뜨렸다.


“로키!” 오딘이 소리쳤다. 그는 궁니르를 소환했고, 그것은 살아있는 것처럼 번쩍였다.


로키는 달려가고 올라가서 떨어지고 싶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하지만 대신에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를 움켜잡았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주문이 풀리기까지 그 찰나의 순간은 끔찍이도 고통스러웠고, 그는 바닥에 무릎 꿇고 엎드려 괴로움에 비명을 토해냈다. 이제는 다른 위안을 구하기에도 늦었다, 고통은 도처에 존재했고 그는 그 속에서 길을 잃었다. 눈물이 흘렀고, 그는 이를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눈물은 쏟아져 내렸다.


“아가, 쉬이이잇.” 프리가가 그를 가까이 끌어당겨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법이 그녀의 손가락 끝에서 스며 나와, 그를 진정시키려는 듯 그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곧 그는 그녀에게 기댄 채 새끼 고양이처럼 몸을 축 늘어뜨렸다.


“당신을 증오해.” 그는 그대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왜 날 잡지 않은 거야? 왜 날 잡으려 하지 않죠?”


“아가, 넌 떨어지지 않아. 내가 널 잡았다. 우리가 잡고 있어. 넌 지금 땅 위에 있어, 가족이 여기 있어. 쉬이이잇.”


“아니잖아요 가족이.” 로키는 속삭였다, 숨은 여전히 가빴으며, 그녀의 주문에 저항했다. “아니잖아요.”


“아니야, 우린 가족이야.” 그녀는 그의 머리와 이마에 입맞춤하며 말했다. “널 처음 본 순간부터 내 아들이라는 걸 알았어. 내 귀여운 아이.”


“대체 무슨 일이죠?” 토르는 물었다— 하지만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제 동생을 뒤에서 양손으로 붙들어 매었고, 고통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말하지 마세요.” 로키는 말했다. 제 형을 피하려고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제발, 이렇게 빌게요. 못 견뎌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못 견뎌요, 못 견뎌, 못 견뎌.”


“무슨 상황인 거죠?” 토르가 재차 물었다. “로키, 어째서 그런 말들을 하는 거야?”


“토르, 얘야, 가만히 있으렴.” 프리가는 어느 때보다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손가락은 로키의 머리칼의 쓸어넘겼고, 그를 어를 때마다 마법이 쏟아져 나와 그에게로 흘러들어 갔다. “우린 진정하고 기다려야 해, 로키가 벗어날 때까지. 아가, 모든 걸 흘려내 보내렴. 그건 독이야, 그건 네 속에 존재하면 안 되는 거야. 가족이 여기 있단다, 우린 널 진정으로 사랑해.”


그녀의 말과 떠받치고 있는 형의 손길이 주는 위안에도, 로키는 목이 쉬도록 흐느끼며 몸을 계속해 떨었다. 오직 들리는 것은 침묵이었다. 오딘의 침묵. 아버지신은 그들과 나란히 무릎 꿇었지만, 그는 지켜보기만 했다. 주름진 얼굴은 괴로움과 절망적인 혼란으로 가득했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로키는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희망하던 마지막 티끌 같은 존재의 죽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애도했다.




로키가 깨어났을 때, 눈꺼풀은 퉁퉁 부어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그는 여전히 프리가의 주문에 걸려 가만히 있었다. 혹은 움직일 의지를 잃었거나.


하지만 시야는 여전히 작동했고, 그는 매트리스 위에서 제 머리맡에 머리를 누인 토르를 발견했다. 로키의 침대 바로 옆에 무릎 꿇어앉아, 팔과 머리만을 매트리스 위로 올려두었다. 손 하나가 로키의 팔목에 수갑처럼 채워져 있었다, 마치 제 동생이 그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질까 봐 두렵다는 듯이.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로키는 제 뒤로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내쉬는 숨은 제 목 뒤를 간지럽혔고, 그녀의 손가락은 제 팔 위에 편안히 올려져 있었다. 둘 다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로키는 제 머리를 이리도 다정히 쓸어 넘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 수 없었다. 혹은 제가 베고 있는 무릎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그 즉시, 그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겐 그러할 힘도 남지 않았다. 오로지 두꺼운 눈물만이 천천히 그에게서 흘러내렸다. 제 심장은 모든 것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로키.” 하고 오딘이 말했다. “가만히 있으렴, 얘야.” 손가락이 로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수 세기 동안 한 번도 나눠본 적 없는 손길이었다.


“해가 떴습니다.” 로키는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갈라졌다. “재판을 열어야 해요.”


“지금은 신경 쓰지 말아라. 그냥 넌 가만히 있으면 돼.”


“당신이 증오스러워. 당신이라면, 내가 놈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죽이게 내버려 두겠지.”


“그놈이 누구길래?” 오딘이 말했다. “틀림없이 네 아버지는 아니쟎느냐. 놈은 그럴 자격을 잃었어.”


로키는 침을 삼키고 입술을 핥았다. 목을 축일 물이 필요했다. 그는 토르를 바라보며 문득 그가 무엇을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형이 이를 아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때야말로 가망 없는 파멸 속으로 빠져들어 가 헤어나오지 못할 때였다.


“그 애는 우리 얘길 듣지 못해.” 오딘이 말했다. “궁니르가 우리의 대화를 차단해 줄 거다. 토르는 동생이 화가 나 있다는 것만 알아. 이유를 그 애에게 얘기할 건지는 네 선택이야. 하지만 난 내게는 이유를 말해줬으면 한다, 로키. 지난밤, 넌 내가 널 떨어지도록 방치했다고 했지. 난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하려고 몇 시간을 씨름해보았지만, 결국엔 알 수 없었어.”


“재밌네요. 나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말이 전혀 되질 않아.”


“은유였어요.” 로키는 속삭였다. 꼭 감은 눈을 따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은유였지.”


“뭐에 대한 은유라는 거냐?”


로키는 미소 짓더니 목이 쉰듯한 웃음소릴 조그맣게 흘렸다. “당신이 마침내 파악했을 때의 얼굴을 내가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하지만 역시나 변함없을 거야. 당신은 가장자리 너머로 침을 뱉으며 귀찮은 일에서 해방이라고 말할 테니까.”


오딘의 손가락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래, 아버지신. 지난밤 말했던 것처럼, 당신이 내 마음을 정말로 두 쪽 내버렸지. 난 이미 미쳤어. 그것이 이제는 밖으로 풀려났으니, 쉬쉬할 필요는 없어.”


“넌 미치지 않았어, 로키. 때론 고통이 그런 느낌일 수 있다, 하지만 네 정신은 온전해.”


“여전히 내가 누군지도 감을 못 잡는다는 증거로군.”


“그러면 말해 보아라.”


“괴물.”


“아니야. 넌 지금 분노로 얘기할 뿐이다. 짐승이 사로잡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 하지만 그건 감정일 뿐이야. 실제가 아니라.”


“당신은 내가 무엇을 했는지 모르잖아. 내가 죽였어.” 로키는 제 고백에 숨차게 웃었다. 체면만은 지키겠다는 그 일말의 희망도 이제는 포기했다.


“바이프로스트의 일이 내 생각보다 네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구나. 죄책감, 그 역시 네 정신을 찢는 괴물 같은 느낌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또한 감정일 뿐이야. 네 진짜도 아니며 언젠가는 지나갈 감정. 그 감정들에서 완전히 벗어나 네가 전처럼 행복했으면 하지만, 그건 역시 거짓말이 되겠지.”


“음, 그리고 이런 얘길 그만두는 거고. 내가 당신을 정말로 얼마나 증오하는지를 알아줬으면 좋겠군, 아버지신.”


“그건 괜찮다. 냉담보다 차라리 증오가 나으니. 네 분노를 표출해야겠다면 내게 화내도 좋다. 감당할 수 있어.”


“정말로? 내게서 벗어나고자 그 편리한 낮잠으로 빠져들 것 같지는 않고? 당신은 아비라기엔 끔찍하다고.”


“그래, 다른 건 또 무어냐?”


“당신은 신경 안 써, 신경 안 써, 안 쓴다고.”


“그건 틀려.”


“난 죽고 싶어.”


“그 또한 틀려. 네 자기보존 욕구는 그보다 강해. 이는, 거듭 말하지만, 네 슬픔과 분노에서 비롯된 말뿐이야. 넌 아주 강하게 삶을 바라고 있어. 그러지 않았다면 도움을 청하고자 울부짖지 않았을 테지.”


로키는 웃음을 터뜨렸고, 이내 웃음소린 흐느낌으로 조용히 들썩였다. “이젠 상관없어. 모두 똑같이 끝날 테니까.”


오딘의 손가락이 다시 머리를 넘겼다. “난… 난 이런 반응을 짐작했던 건 아니었단다.”


“이 정돈 당연한 거야. 당신은 무얼 기대했던 거지?”


“솔직히 하자면, 난 네게 말해줄 생각은 없었단다. 그런 것들은 별로 중요치 않으며 뭘 변화시키지도 않아. 로키, 난 말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그건 내가 신중히 말을 고르기 때문이야. 난 의도한 것만을 간략히 말한단다. 내가 널 나의 아들이라 부르는 것은, 네가 내 아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아스가르드의 사람이라 말하는 것은, 네가 이곳에서 자랐기 때문이야. 내가 네가 버려진 사실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은, 결국엔 널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가 너에게 라우페이와의 관계를 말하지 않은 것은, 놈은 네게서 아버지라 불릴 자격을 포기했으며 아버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게 사실이란다. 난 이를 사실로 여기며 나아갔어. 너도 그럴 거라 생각했었단다. 네게서 이런 슬픔을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어, 그 때문에, 난 지금 몹시도 후회하고 있어.”


“당신은 그저 동정할 뿐이야.” 로키는 중얼거렸다.


“아니야, 로키. 네가 아버지가 되기 전까지는, 이 감정들을 네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거다. 네가 버려진 것을 보았을 때 내가 무얼 느꼈는지— 네가 이렇게 망가지고 불행한 모습을 보며 지금 당장 느끼고 있는 게 무엇인질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동정이 아니야, 내 아들. 이건 그릇되었다는 느낌이란다. 언젠가 네가 아버지가 되어 아이가 고통에 찬 걸 보게 되면, 네 본능이 그 상황을 고쳐라 외쳐될 거야.”


“거짓말.” 로키는 속삭였다. “동정이 아니었다면, 그건 탐욕이었겠지. 난 단지 당신이 훔쳐낸 유물에 불과해. 그 쓸모에 비해 오래 살아남았을 뿐인.”


“아, 네겐 아직 쓸모가 남아 있단다.”


로키는 고갤 돌려 경악과 불신에 젖은 시선으로 아버지신을 올려다보았다.


“로키, 넌 원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단다.” 오딘이 말했다.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의미가 아니야. 넌 내게 의미가 있었어. 너라는 존재가 애초에 요툰헤임과 조약을 맺어야겠다고 확신을 준 거야— 네게선 괴물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 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난 아마 그 자리에서 쓸어버리는 것을 택했을 게 분명해. 넌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숱한 잘못된 견해들을 정정해주었어. 그때의 난 토르와 비슷했단다. 생각 없이 입을 놀리고 공격만을 갈망하는 칼에 지나지 않았단다. 그런 내게 넌 네 역할을 톡톡히 해냈어, 네 배우고자 하는 열망과 나눠주고자 하는 사랑으로. 이내 난 널 내 아이로만 여겼고, 그건 명백한 사실이 되었어. 그러자 네가 얼마나 똑똑함을 주체못하는 꼬맹이로밖에 안 보이더구나. 지난날 네가 무시당해왔다고 느꼈다면, 그렇다면 그건 내가 뜻했기 때문이야. 넌 아이처럼 주의를 끌려고만 하고 있어. 어째서 그런 행동에 내가 관심을 기울이려고 하겠니?”


“당신을 증오해.” 로키는 말을 되풀이했다— 오딘은 그에게서 모든 무기를 빼앗아 갔고,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그 말뿐이었다. “당신이 증오스러워.”


“네게 닿을지 몰라도, 미안하다, 로키. 난 네가 이런 고통에 짓눌리는 걸 바라지 않았어.”


“아니. 아니, 난 절대로 당신을 용서 안 해. 우린 끝났어.”


“넌 끝냈을지 몰라, 하지만 난 널 사랑하는 걸 절대로 그만두지 않을 거다. 지금은 가만히 있으렴, 내 아들. 원한다면 날 증오해.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한 말들에 대해 고려해 보아라. 네가 충분히 이해해 볼 수 있게끔 네게 시간을 주마.”


> 13편



작가의 말: 이렇게 장황해져서 미안해요. 하지만 정말로 12 챕터에서는 이 내용을 꼭 쓰고 싶었어요.


먼저 떠올린 건 이 이야기였어요, 그 뒤에 살을 붙어 나가기 시작했고요. 원래 떠올린 플룻은 로키가 오딘에게 무의 공간으로 어떻게 떨어지게 되었는지를 소리치는 거였죠. 거기서 오딘이 로키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하나도 이해 못한다는 상황이 좋았거든요. 그냥 제 아이가 커다란 충견을 받았고, 자신은 아버지로서 완전히 실격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는 거요. 로키의 끔찍한 행각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그 어떤 잣대도 오딘에게 주지 않는 일이 제게는 무척이나 중요했습니다.


전 사실 시간 여행물을 쓰려고는 잘 안 해요. 별로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혹시 당신도 취향이 아닌데도 이 글을 읽고 계시다면 정말 감사 인사 드립니다.) 하지만 로키가 절 가만히 두지 않았고, 그리고 로키가 자신이 한 행동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절대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거란 거죠. 언제나 타인만이 로키의 잘못을 지적했으니까요. 네, 그래서 제가 이 시간 여행물을 쓰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토르의 요툰에 대한 비난을 너무 나쁘게만은 생각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직 성숙해지지 못했고, 그는 그냥 동생을 지지해주고 유대를 맺고 농담 따먹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그 동생은 저를 부추기고 있었지만요. 토르가 로키가 무엇인지 알았더라면(일단은 이 시점에서는 아닙니다만), 제가 동생에게 상처 주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먹었을 거예요. 영화에서는, 로키가 분노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토르가 알게 되고 그 분노가 무엇인지 제 손으로 직접 확인해보려고 했죠. 그게 이번 이야기에서 일어난 거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다면, 코멘트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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