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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Bargaining
거래
Bargaining
written by proantagonist
translated by windmill
chapter 11
손톱이 머리를 살살 긁는 기분에 로키는 깨어났다.
방 안은 어두웠으며, 타고 남은 재 냄새와 커피콩의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휘장 사이로 햇빛이 드문드문 들어와 번개처럼 벽에 비치었다. 갈피를 못 잡은 채로, 로키는 꽤 잠시간을 그대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몇 년만에, 조금이지만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한 것 같았다. 비록 저가 있는 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제 형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았으며 그건 그가 안전하다는 의미였다.
“아직 못 움직이겠냐?” 토르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로키의 머리 위쪽에서부터 들려왔다.
로키가 몸을 움직여 기지개를 켜자, 그의 뺨에 쿠션의 거친 면이 닿았다. 몇 번을 눈을 깜빡거린 뒤에야, 그는 어디에 있는지를— 그보다 더 중요한 언제에 있는지를 기억해냈다. 그는, 잠든 어느 시점에, 몸을 움직여 토르의 허벅다리 옆 쿠션에 머리를 누인 듯했다. 토르는 그 옆에 몸을 바로 해 앉아 있었다. 그는 손으로 입을 가리지도 않은 채 하품을 하고는, 무심결에 동생의 머리를 헝클었다.
로키는 입술을 핥았다. 일어나기에는 너무 지쳐있었다. “지금 몇 시야?”
“아직 연기는 피우고 있어.” 토르가 말했다. “늦은 아침, 아닐까 한다. 우리 둘 다 호출이 있었어.”
로키는 몸을 돌려 똑바로 누워, 형을 올려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는 앓는 소리를 내며 쿠션으로 머리 위를 덮었다— 그건 아버지신이 깨어났다는 소리였다.
“같은 생각이다.” 토르가 말했다. “아버지신이 몇 달은 더 주무셨으면 좋겠어. 어쩌면 우리 호출받지 못했다고 말해 보는 건 어떻냐.”
“문은 왜 열어준 거야, 이 멍청이?” 로키의 말은 쿠션에 묻혔다.
토르는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뭐, 문을 두드렸으니까. 그보다 네가 아버지신을 두려워할 이유가 뭐야? 힘을 잃고 추방된 사람은 바로 나였지. 너를 왕위에 앉히셨고. 그리고 들은 바로는, 내가 일으킨 모든 문제에서 왕궁을 지켜내는 일을 네가 훌륭히 해냈다지. 지금 너야말로 아스가르드의 황금의 아이야. 머리가 좀 새까맣긴 하지만.”
품위 없는 콧방귀 소리가 쿠션 아래서 들려왔다. “그건 혹시 질투야?”
토르는 음산하게 웃음 지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네가 한번 말해 봐, 그 방면에선 네가 전문가잖아.”
로키는 얼굴에서 쿠션을 치우고 제 형을 올려다봤다. 아이싱 조각과 부스러기들이 로키의 이마 위로 떨어졌고 그는 잇새로 분통을 표하면 그것들을 치웠다.
“요툰들이 아스가르드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 사람은 바로 나야, 알고 있겠지만.” 하고 로키는 불쑥 말했다. “당연히 어젯밤 말고, 몰래 들어온 첫 날 말이야.”
토르는 입을 크게 벌린 그대로 얼어붙었다. 페이스트리의 금속 포장지가 그의 손안에서 무참히 구겨졌다.
로키는 아주 능란히 사악한 미소를 얼굴에 그렸다. “기억하고는 있지, 응?” 그러며 목을 울렸다. “대관식 날 말이야. 새 출발을 하려던 바로 그 순간. 아, 기억해주면 좋겠군, 왜냐하면, 난 맹세코 절대 못 잊어. 네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정말 근사했거든.”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소파에서 떨어져 나가 벽난로로 날려졌다. 로키가 가까스로 굴러가는 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그는 뇌신이 손에 묠니르를 소환하려는 걸 목격했다. 토르는 나직이 로키의 이름을 어떤 다짐처럼 뱉었다.
로키는 헉 숨을 들이켜고는 머리를 감쌌다. “난 네 왕이야!”
아버지신은, 당연히도, 그들을 앞에 세웠다.
그들이 왕의 개인 서고로 불렸을 때, 오딘은 장대한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는 의자 팔걸이에 팔꿈치를 기댄 채, 불길한 간격으로 손가락을 툭툭 치고 있었다. 기쁜 기색이 아니었다.
로키는 아버지신의 어깨너머로 유리 상자에 든 열 한 병의 귀중한 와인 병을 흘겨보았다. 일전 태연자약히 병에 물을 채워 넣고 색을 발하는 주문을 걸어놓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너희 둘 다 마법으로 위장하고 있지.” 하고 오딘은 말했다. “마법을 풀어라.”
형제는 시선을 교환했다.
“당장.”
로키는 한숨을 내쉬고는 작게 손동작했다. 마법이 사라지고, 얼굴이며 손이며 옷 곳곳에 먼지와 재투성이인 모습을 드러냈다. 제대로 씻을 시간이 없었다. 정교한 마법으로 아물어가던 로키의 입술은 다시 상처가 벌어졌고, 깃은 찢어졌으며 머리에는 페이스트리 부스러기가 온통 흩뿌려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 그의 머리 위에 페이스트리를 부섰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토르는 턱 위에 멍을 달았고, 머리는 한쪽에 쥐구멍을 파놓은 것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왼쪽 턱수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빈 자리를 손자국이 뚜렷이 메꾸고 있었다.
그들 둘 다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양, 아버지신에게 미소지었다.
“마음이 바뀌었다.” 하고 오딘이 말했다. “다시 마법 걸어.”
로키는 주저 없이 따랐다.
그는 제 평생 이렇게 목욕하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너희 둘 다 즐겁고 언제나와 같은 재회의 시간을 보낸 걸 보니 정말 기쁘기 그지없구나.” 오딘 평소의 조소를 말끔히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의 급한 부름에 너희 놀이시간에도 불구하고 그 몸 끌고 나와 이 얼마나 고마운지. 그래 시간은 어떻게 뺀 거냐? 낮에는 낮잠도 자고, 다른 렐름과 평화를 두고 끊임없이 격전을 벌인다고 시간을 짜내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 그러면. 너희 둘 다 친히 행차해 이리 은총을 베풀어주었으니, 우리 대체 무슨 얘기를 해볼까?”
정적이 흘렀다.
“저희 둘 다 얼마나 죄송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논하는 겁니다.” 하고 한참 뒤에 토르가 말했다. 그는 기대하는 미소를 짓고는, 몸을 기울여 동생을 슬쩍 쳤다. “그렇지 않으냐, 로키?”
그 말에 로키는 눈을 질끈 감고는 콧등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그래, 내 장담컨대 너희도 죄송하겠지.” 하고 오딘이 말했다. “내가 너희와 끝내고 나면 말이다.”
그간 오딘이 터뜨려왔던 분노 중에서도, 이번 격발은 굉장했다. 그의 목소리는 벽을 부술 듯이 컸으며, 통로를 울렸고 지반을 뒤흔들었다.
“너희 둘 다 어린애처럼 굴었어.” 오딘은 고함쳤다. “토르, 넌 대체 무슨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요툰헤임으로 떠났던 거냐? 동생까지 데리고서! 내가 널 찾아냈을 때, 넌 격렬한 전투에 취해있었다. 넌 너 자신 말고는 다른 이들은 안중에도 없었어.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놈. 로키의 안전은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거냐? 이 렐름의 안전은? 네 부하를 자처하던 팬드랄의 안전은? 네 녀석의 무자비한 전투에 대한 갈망 때문에 그는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왕위를 계승한다는 자가 이렇게나 자격 없는 녀석인 줄은 내 몰랐구나. 자, 내가 말한 것 중에 네 유치한 변명을 덧붙일 것이 어디 있느냐?”
로키는 반쯤 제 형이, 추방되기 전처럼, 항변하리라 추측했다. 하지만 토르는 시선을 낮추었다. 아무래도 그의 심금을 아버지신이 마침내 울린듯했다. “없습니다, 아버지.” 하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 너, 로키.” 오딘이 물어뜯을 듯이 말했다. “넌 네 형과 네 가족을 배신하고 이 렐름을 가장 고통스럽게 했다— 이목을 끌겠다는 네 이기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서. 사람들이 죽었다. 평화는 깨졌고. 너를 향한 네 형의 믿음마저도 뒤흔들렸다. 다른 렐름은 폐허가 되었어. 이게 다, 무어 때문이겠냐? 한낱 입증 때문이다, 그마저도 네 자존심이란 끝없는 골 속으로 삼켜져 버릴 한순간. 봐라, 아스가르드의 이 유치한 왕을!”
로키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눈썹을 그러 올리며 이 모든 게 끝날 때까지 초를 세었다. 한참을 하고도 더 셀 법한 끔찍한 느낌이 들었다. 오딘은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너희 두 녀석 다 찢어지고 더러워졌어도 그 왕실 의복을 차려입고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를 잊었나 본데.” 하고 말했다. “그건 내가 네 녀석을 그 자리에 두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문의 이름을 줬기 때문이야. 이런 불명예스러운 행동이 계속된다면, 그 자격마저 박탈하는데 내가 주저할 거라고 생각들 말아라. 지금부터, 당장에 둘 다 철들 결심을 해. 내 말 완벽히 이해했느냐?”
“이해했습니다, 아버지.” 그들 둘 다 일제히, 비록 로키는 처음 한마디뿐이었지만, 답했다.
오딘은 성난 소리를 내지르는 동안 제대로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서 있었다. 그러나 분노의 외침에서 날카로움이 사라지자, 그를 누르는 육체적 피로에 의자에 주저앉았다. “난 늙었다, 아들들아.” 오딘이 한숨처럼 말했다. “분노의 불꽃은 선명하게 타오른다. 너희들이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야. 내게 남은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 두 사람 사이에 위험이 존재한다는 거 안다. 왕좌는 하나뿐이고, 난 너희 둘을 그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게끔 길러왔어. 언젠가 그 자리가 너희 둘 사이를 갈라놓을까 봐 난 두렵구나. 둘 다 자라온 방식을, 유년시절 함께 이뤄온 것을 절대로 잊지 말아라. 너희가 형제고 같은 편에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족보다 상처 입히기 쉬운 사람은 없어. 너희들이 아무리 비난해도 가족은 여전히 널 사랑하기 때문이야. 네 어머니와 난 이곳에 영원히는 있을 수 없다, 서로의 명맥을 이으려고 너희가 분투하지 않는다면 네게는 가족도 보호책도 안식처도 절대 남지 않아. 이 나인 렐름에 너희가 지닌 연결점을 공유하는 이는 아무도 없어. 형제보다 너를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시는 그 사실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약속해다오. 처음부터 너희가 그 사실을 기억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얘기할 필요도 없었다.”
“맹세하겠습니다, 아버지.” 토르가 말했다. “왕위로 사이가 틀어지는 일은 절대 없게 할 겁니다. 왕관이 로키의 머리 위에 일평생 자리한다 해도 말입니다.”
“저 역시 맹세합니다.” 로키는 말했다. 그리고 진심이었다. 적어도 그는 진심이길 원했다.
하지만 작은 목소리는 마음의 틈새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며 그를 비웃을 뿐이었다.
(타고난 거짓말쟁이는 어디 못 간다니까.)
“앉아라, 로키.” 토르가 물러간 뒤에 오딘은 명했다. 그는 책상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의자를 가리켰다. “네가 왕위에 올랐을 때, 함께 앉아 얘기를 나눴으면 하자고 너와 약속했지. 최근 몇 주간 무슨 일을 했는지를 듣고 싶구나.”
로키는 겨우겨우 침을 삼키며 최대한 의자 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굳이 그래야 되나요?”
오딘은 서랍을 열어서 체스 기물이 든 작은 나무 상자를 꺼내었다. 보드는 이미 책상 자체에 새겨져 있었다. 로키는 호기심이 생겨 상자를 흘겨보았다. 아버지신은 게임판의 지배자였다, 전장에서 그러하듯이. 뛰어난 정치 전략가였으며, 더는 필요찮은 말을 희생하는데 과감했다.
로키는 여느 때보다 체스에 뛰어났지만— 보드 위의 실제 기물을 보지 않고서도 그는 말만으로 체스 게임을 할 수도 있었다.— 아버지신은 저보다 게임 경험이 수천 년은 족히 되었다. 그러나 로키의 재능은 아스가르드를 떠나 제 일생에서 가장 꽃피우고 있었다. 그는 궁금했으므로 자리에 앉았다.
“처음부터 시작해보자.” 오딘이 로키의 앞에 백색 말들을 줄짓고는 흑색을 가져가며 말했다. “시프와 워리어스 쓰리가 배신하기까지 얼마나 걸리더냐?”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로키는 머리가 아파져 왔다. 아버지신이 게임으로 무얼 하려는지 알아내려고 애쓰는 와중에, 아버지가 그의 괴물 양자로 무얼 계획하고 있는지 고심한다고 그는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바이프로스트를 그런 식으로도 쓸 수 있는 줄은 몰랐군.” 하고 말하는 오딘의 눈은 로키보다는 보드 위에 집중되었다. “재밌는 전략이야.”
로키는 한 손으로 비숍을 움직여 아버지의 나이트를 잡자, 심하게 우쭐해지려는 얼굴을 달래었다. “그 건에 대해 하시려는 말씀은 그게 다인가요?”
오딘의 킹이 왼쪽으로 한 칸 이동했다. 방어 태세였다. “내가 판단이라도 내릴 줄 알았느냐?”
“뭐, 네. 아무래도 실망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게 아니면 감사의 표현 같은 걸 생각했습니다, 목숨을 구하려고 한 행동이었으니까요. 솔직히 인정하자면, 전 반응을 내다봤던 적이 한 번도 없었죠. 그 지레짐작들은 항상 빗나갔으니까요.”
“왕으로 있는 동안은 넌 독보적 지위에 서 있는 거다. 그런데 어째서 내게 인정을 구하느냐?”
(당신이 내 아버지니까.)
로키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은 입 끝에서 죽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보드 위로 시선을 다시 돌렸다가 잠시 후 폰으로 공격에 들어갔다.
“누군가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하지.” 오딘은 룩을 이동시켜 그 선상에 로키의 퀸이 자리한 것을 쳐다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때로는 말이다, 그 결단이 옳거나 그르지만은 않아. 단지 점점 커지는 재난의 연속일 뿐. 그 자리란 그런 거다. 어떤 이들은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목적도 없이 불가능한 결정을 요구할 수도 있어. 하지만 네 아버지로서 조그마한 조언을 해주마.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왕으로서 내린 결정에 책임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단에 따른 것을 넌 감수해야만 할 거다. 그 결과가 너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어.”
로키는 입술을 앙다물고는 폰을 퀸의 왼쪽 뒤에 두며 방어에 들어갔다. “그러는 아버지신께서는 발목 잡혀 보셨나요?”
한숨이 내쉬어졌다. “매일 조금씩 내 발목을 잡아 오는구나. 그래서 궁니르가 아직 네 손에 머물러 있는 이유다.”
로키는 게임에 관해서는 잊었다. “뭐라고요?”
“네겐 아직 끝내지 않은 일이 있지 않으냐. 재판 말이다. 네 어머니가 죄수들에게 선고를 내리기 전에 네게 최소한 일주일은 기다리라 부탁했겠지. 그래, 현명한 조언이야. 뭘 할지는 생각해보았느냐? 분명 네 직감은 사형을 선고하라 할 테지. 하지만 라우페이 왕의 감옥에서 네가 쥐고 있는 것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 수단일지는 알고 있느냐?”
로키의 맥박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지적해주셔서 정말로 감사하군요. 충분히 고려해보겠습니다.”
오딘이 움직일 차례였지만, 그는 보드를 보지 않았다. 대신에 표정 없이 로키를 불편하리만치 아주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래 이번 경험은 어떠냐? 왕 노릇은 즐겁더냐?”
“충분히 유익했습니다. 이 특권이라는 것이 비웃을 만한 게 아니더군요. 하지만 말씀하셨다시피, 어려운 자리니까요.”
“네 성미에도 별로 어울리는 자리는 아니겠지. 내 생각이 틀렸다면 말해 보아라, 로키, 하지만 네가 그리 달가워하지는 않았을 거로 생각한다. 너도 알겠지만, 난 나이를 이유로 토르를 택한 게 아니었어.”
(오, 절 믿어도 좋습니다, 아버지신이시여. 저도 알고있으니까.)
“토르가 지닌 투명성은 사람들에게서 충성을 살 수 있지. 하지만 네가 지닌 결심으로는 사람들의 생존을 지켜낼 수가 있다. 언젠가 네가 토르를 훌륭한 조언자로 성장시킬 수도 있을 거다. 전술에서 네 교묘함에 필적할만한 사람들도 존재해. 나를 제하고도 말이다. 보아하니, 과격한 공격을 선호하는 건 여전하구나.”
로키는 침묵했다. 손가락은 공격 태세에 있는 오딘의 룩을 치기 위해 꿈틀거렸다. 그에게는 이미 다음 5수가 준비되어있었지만, 제 차례가 아니었다.
“내가 결국은 토르를 왕위에 앉히겠다고 한다면 넌 화를 내겠느냐?” 고 오딘이 물었다.
“아니요.”
(그래.)
“너에 관해서도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해둔 일이 있어.”
로키는 급히 숨을 들이쉬었다. 아버지신의 말 뜻을 알 수 없어 두려웠다.
“난 네가 토르를 도와줬으면 한다.” 오딘은 말을 이었다. “그 앤 미드가르드에서 내가 의도했던 모든 걸 배운 게 아니야. 요툰헤임에서의 행동으로 그 애와 한바탕했을 때, 너를 향한 그 애의 애정이 집으로 돌아오게 했고 겸손을 가르쳤어— 그래 그 또한 가치 있는 일이지. 언젠가 그 애가 왕이 되었을 때 그 어깨를 내리누를 무게를 너도 이제 맛보았지 않았느냐, 난 네가 그 애가 준비할 수 있게 잘 이끌어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그것이 제 처벌입니까?” 로키는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아스가르드로 요툰을 끌어들인 것에 대한? 제 자리를 대신하도록 토르를 교육하라고요?”
오딘은 껄껄 웃었다. “넌 항상 네 형을 인도하려 했잖니. 이전에도 네 지혜를 나누기도 했고. 그러니 네게 익숙잖은 일은 아닐 거다. 그리고 아니, 이건 네 처벌이 아니다. 토르 역시 배워야 할 게 남아있어. 네 벌은 네가 불러온 혼란을 정리하고 파괴한 평화를 재구축 하는 것이다. 너희 둘 다 사절로서 요툰헤임으로 가거라. 노른께서 우릴 보살펴 주실 게다.”
로키는 갑자기 속이 쓰려 왔다. 끔찍이 여기던 공포 중 하나가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었다. 대체 아버지신이 어디까지 저를 이용할 작정이길래? “아버지, 제게 어떤 식으로라도 그 애정이 남아 있으시다면, 부탁입니다 절 거기로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오딘은 그 묘하고도 표정 없는 눈길을 계속해 보냈다. “네게 커다란 애정을 품고 있지만, 처벌로 네가 좋아하는 걸 해서야 효과 없잖느냐.”
“이건 호오의 문제를 넘어섰습니다.”
“라우페이 왕이 네 어머니에게 한 짓 때문에 네가 화가 났다는 거 안다. 하지만 네 행동에도 결과가 따른다는 걸 알았으면 해서야. 네가 자극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을 거다.”
“거기에 대해서는 잘못을 인정합니다. 원하시는 그 어떤 것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제발 절 거기에만은 보내지 마십시오.”
“외교 임무로 가는 게 아니라 영구히 이주라도 하는 양 구는구나. 너의 역할은 그저 더 이상의 살육을 막고 영구 평화를 구축하는 거다.”
“그렇다면 제가 그 역할에 맞지 않는다는 소리겠죠, 전 그들 모두가 말살되는 걸 보고 싶어 하니까요. 그 녀석들은 괴물이에요.”
“네게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실망스럽구나. 토르가 왕좌를 받아들이기에는 제대로 갖춘 것이 없다고 생각한 네가, 그와 같은 편견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전 그렇게 커왔어요.”
“난 그리 양육하지 않았어. 네 어머니도 마찬가지야.”
로키는 도전하듯 눈을 찌푸렸다. “정말— 어렸을 적 우리에게 해준 얘기는 다 뭔가요? 당신이 우리에게 그 생각을 불어넣고, 도사리는 괴물 모두를 죽이라 부추겼잖아. 설마 다 잊으셨나?”
“잊지 않았다.” 오딘이 답했다. “그리고 난 지금 네 말투로 징계를 줄 수 있어, 로키, 예의를 담아 말해. 네가 지하에 투옥된 요툰들과 괴물을 연결짓고 있단 건 알겠다. 그래, 그건 맞다, 그들이 극악무도하게 행동했지,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솜씨 있으며 문화가 존재한다. 그리고 다시 일러주자면, 너와 네 형이 먼저 끔찍하게 행동했어. 그러니 너희 둘 다 요툰헤임으로 가는 거다, 아들아, 난 이 경험이 네게 타인을 좀 더 성숙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내 말 이해했느냐?”
로키는 앉은 자리에서 온몸을 떨었다.
“대답을 바란다. 내 말 이해했느냐?”
로키가 입을 떼고 말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예.”
“예?”
“이해했습니다, 상황.”
“그렇게 의례적일 필요는 없어.” 하고 오딘이 말했다. “네 아버지로서 나를 공경하란 것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넌 원하는 게 있을 때만 내게 아버지라 하는구나. 내가 널 왕위에 앉힌 일로 네가 자만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네 어머니가,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의 네 행동에 대해 말해주었다.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
“아니요.”
“아니요?”
“없습니다, 아버지.”
“널 지켜볼수록 네 어머니 한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겠어. 두 눈에 냉소가 가득하구나. 내게 화가 난 거겠지.”
로키는 대답할 듯 그를 쳐다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의 공간으로 떨어지지 않고 토르를 살아있게 하겠다고 맹세했었다, 그러니 분노에도 그는 침묵을 유지했다.
“알겠다.” 오딘이 딱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네 불만을 소리 내지 않겠다면, 네가 그걸 떨쳐냈으면 한다. 오늘은 좋은 날이지. 이제 물러가도 좋아, 남은 시간 마음껏 즐기거라.”
“게임을 아직 마무리하지 않았습니다.”
오딘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 실은 마무리되었어. 네가 남은 기물을 희생해서 퀸을 지켜낸다고 결정 내렸을 때 게임은 끝났단다. 넌 항상 네가 자초할 문제까지는 내다보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지. 7수에 체크메이트다.”
로키는 눈을 깜빡거리며 당혹감에 보드를 내려봤다. 제가 계획한 기물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그려보기를 잠시. 그 진행 앞으로 두 수 뒤에, 그는 간신히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의자에 맥없이 주저앉아, 한 손으로 제 킹을 넘어뜨렸다.
> 12편
작가의 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더 진행될 수록, 로키의 (괄호 속 광기) 생각은 차츰 잦아들고 있는 것 같네요. 여러분이 그 이유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음 이야기에서는 여러분의 가슴을 뜯어낼 생각이라. 정말 기대가 되는 거 있죠.
더 많은 고통과 앵스트가 곧 나옵니다. 그리고 괜찮다면, 이번 편의 오딘의 '오 이 녀석들아 본때 좀 보여주마'에 대해 여러분의 생각이 어떤지 알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