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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Bargaining
거래
Bargaining
written by proantagonist
translated by windmill
chapter 13
“어째서 그 미드가르드인 여자에게 어디서 네 형의 시체를 찾았냐고 묻지 않은 거지?” 마녀는 말했다. “혹은 어떻게 죽었는지?”
로키는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려고 하자 눈을 질끔 감았다. “그런 건 알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바꿀 기회가 있다면 난 알아야겠어. 그러니 말해.”
마녀는 잇몸을 만개하며 웃어 재꼈다. “이래서 좋다니까, 꼬마야. 네 마음이 이리 산산조각이 났으니. 틈이 잔뜩 생겨서 뭘 숨길 수도 있겠어. 이래도 정말 답을 알고 싶은 거야?”
로키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다가올 충격에 저를 도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익사했어.” 마녀는 미소지으며, 그의 반응을 지레짐작했다는 듯이 몸을 앞으로 기댔다. “사막에서 말이야.”
똑딱 똑딱 초가 흘렀다. 똑딱 일분이 되었다. 그러자 로키의 눈이 활짝 떠졌고 그는 숨을 토해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호흡이 다시 자연스러워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토르는 가장 견디기 힘든 애완동물이었다.
그는 로키를 한시도 혼자 두지 않을 거며, 어린 동생이 옷을 갈아입고 요툰의 재판을 준비하는 것을 옆에서 서성거리며 지켜봤다. 지금은 오전 나절이었으며, 오딘과 프리가는 이제 가고 없었다. 로키의 창문은 마법으로 봉해져 있었고, 양친은 동생의 곁을 잠시라도 떠나지 않겠다는 토르의 다짐을 받아낸 뒤에야 그를 혼자 두었다.
다 불필요한 일들이었다. 로키는 엄숙하다 싶을 만큼 침착했으며, 목깃을 바로 하고 견갑을 더듬어 점검했다. 머리와 옷은 흠잡을 데 없었고, 허리는 꼿꼿하게 섰으며 턱은 높게 치켜있었다. 그가 마법을 건 데라고는 충혈되고 퉁퉁 부은 것을 가리기 위한 눈뿐이었으며, 그것이 다였다. 이를 제외한 모두는 제 손으로 직접 해낸 것이었다. 그는 다시는 오딘이 제게 치욕을 주는 일은 없게 할 거라고 자신에게 맹세했었다.
“로키.” 토르가 속삭였다.
로키는 이를 꽉 물었고, 이내 이런 사소한 반응이라도 하는 저를 나무랐다. “나는 괜찮다고.” 그는 이 말만 백번째로 했다. “어슬렁거릴 필요는 없어.”
“괜찮은 거랑은 거리가 멀잖아. 보고 있는 나는 괜찮지 않다. 그리고 이해도 할 수 없어. 왜 나를 밀어내는 거야?”
“너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일이니까.”
“정말 확신해? 왜냐하면, 어젯밤 요툰헤임 건은 네가 날 꾀어낸 거라고 생각하거든. 네 미소가, 내가 했던 말로 묠니르가 날 가치 없다고 판단할 것임을 알고 있다는 미소였다. 그 뒤에 넌 이곳으로 뛰어들었고 순식간에 자제력을 잃었잖아. 내가 대체 어떻게 생각하겠니?”
로키는 토르가 머리 굴릴 때가 가장 싫었다. “아무 생각도 안 해도 돼. 아까도 말했잖아, 나는 괜찮다고.”
그는 떠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토르가 제 길을 막아서고는 양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그에 로키의 시선이 벽을 찾아 헤맸고 곧 한 점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니잖아.” 토르가 그를 조금 흔들면서 말했다. “아니잖아, 넌 나를 봐야지.”
그는 한 손을 로키의 목에 가져다 대었다가, 동생이 여전히 눈을 맞추려 하지 않을 것 같아지자 그의 뺨으로 손을 옮겼다. 그 온기는 로키의 결심을 녹였고, 그의 눈동자는 마지못해 토르의 얼굴을 스치었다. 눈에는 불안에 지친 표정이 담겼다.
토르는 그를 유심히 살피더니 말했다. “몇 주 전만 해도, 넌 날 다른 시선으로 보았었지. 네 천진함에 무슨 일이 생겼던 거야. 예전엔 네 미소를 쉽게 볼 수 있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난 누가 널 다치게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부모님이니?”
로키는 다시 떨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아니.”
(내 부모님도 아니야.)
“그 말을 믿기는 힘들 것 같아.” 하고 토르는 말했다. 그의 눈동자는 감정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로키, 곤경에 빠진 거니? 도움이 필요해?”
로키는 그를 응시했다. 언제나처럼 토르의 말이라는 주술에 사로잡혔고, 그 말들이 제 희망을 다시 한 데로 짜 올릴 것만 같았다.
(맞아, 응, 곤경에 처했어, 제발 날 도와줘, 계속 떨어지고 있어.)
“넌 내가 저지른 짓을 이해 못 해.” 로키는 속삭였다. 구역질이 날 것 같다는 생각에 침을 삼켰다. “토르, 난 용서받을 수 없는 짓들을 저질렀어.”
(나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야.)
“너는 내 어린 동생이지.” 토르는 다시금 그를 흔들며 맹렬하게 말했다. “난 너를 알아. 난 네가 날 두 번 배신했다는 것도 알아, 그런데도 난 여전히 너를 사랑해. 네가 내게 말하지 못할 건 없어.”
로키는 슬프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아니야. 토르, 난 지금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어, 그리고 떨어지게 된다면,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겠지. 넌 내가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실낱이야. 제발 내 비밀을 간직할 수 있게 해줘. 난 준비가 안 됐어.”
토르의 턱이 악물렸다. 그는 이 대답에 달가워하지는 않았지만 강요하지는 않았다. “어젯밤에도 떨어지고 있다고 얘기했었지. 어느 정도 알겠어, 그런 느낌이라는 거지. 넌 지금 어두운 구멍으로 내려가고 있고, 그런데 그런데도 매번 내가 널 잡으려고 할 때마다 넌 내 손을 뿌리치고 있어. 대체 왜 그러는 거니?”
로키는 눈을 감았다. 더는 형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고통 일부분이 눈물을 메마르게 했으므로, 그가 느끼는 것이라곤 무겁고도 집어 삼켜질 듯한 죄책감이었다. 제 형은 대체 어떻게 매번 이런 식으로 그를 향한 제 분노를 앗아갈 수 있단 말인가? 오딘은 대체 어떻게 저를 괴물이 아닌 존재로 여길 수 있단 말인가?
“너는 이해 못 해.” 그는 속삭였고, 속눈썹이 떨려왔다.
“그리고 네 비밀을 얘기할 만큼 날 신뢰하지는 못하는 거겠지, 내가 널 붙잡고 있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난 널 신뢰해, 토르. 누구보다도 널 가장 신뢰해. 하지만 너까지 매달리게 할 날 신뢰하지 못하는 거야.”
“그렇다면 싸우다 죽을 거다.” 토르는 로키의 이마와 맞닿을 때까지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 비밀이 날 죽일 때까지 내가 널 붙들어 매고 있을 거야. 맹세해.”
“아니, 토르. 나야말로 맹세해, 네가 그럴 일은 없어.” 로키가 마침내 눈을 떴을 때, 그 눈은 다시 한번 차분했으며 결의에 차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길 테니까.”
사람들은, 확고한 걸음으로 성큼성큼 지하 감옥으로 향하는 로키의 앞 길을 비켜섰다. 그는 이 이유를 자신의 위축되지 않은 시선 때문이라 혹은 어쩌면 으르는 제 헬멧의 높이 때문이라 생각하고 싶었다. 그것도 아니면 제 손에 쥐고 있는 궁니르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토르는 바로 제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으므로, 그 위협적인 덩치가 이 다급한 움직임을 불러온 것에 가까웠다. 흥 깨기는.
“네가 좀 가버렸으면 좋겠어.” 로키는 말했다. “레이디 시프를 떨어트렸더니, 그새 새 그림자가 생겨버렸군.”
“그러는 나야말로 네가 뭘 하려는지 말해줬으면 좋겠구나.” 토르는 되받아쳤다. “널 떠나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약속했어.”
“오늘 사형 선고할 예정인 왕실의 괴물들 중 하나를 방문할 의향이야. 그 정도면 내 피해자와 개인적 시간을 보낼 이유로 충분하겠지? 넌 문밖에서 기다려도 돼.”
그들은 모퉁이를 돌았고, 토르는 침묵하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낮은 어조로 말했다. “난 아직 내 무기를 집어 올릴 수 없어, 너도 알겠지만. 대식당에 그대로 있단 말이다, 우리 테이블 바로 아래 숨겨진 채로. 어쩌면 우리 둘 다 요툰헤임에 대해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이래서 난 네가 독선적이면서도 위선적일 때가 사랑스럽다니까.”
“아버지가 우릴 잘 가르친 거지.”
로키는 몸을 돌려 즐겁게 씩 웃어 보였다. “대단해, 형.”
“빙빙 돌 때 그 뿔 좀 조심해줄래.”
“숭배의 의미를 담아 거리를 벌려볼 생각이나 해.”
그들은 지하 감옥으로 이어지는 짧은 층계를 걸어 내려갔고, 로키는 목적과 일치되게 라우페이의 감옥을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고 지나갔다.
“로키?” 토르는 주춤했고, 걸음이 살짝 느려졌다가 가볍게 뛰어 동생을 따라잡았다. “내가 모르는 요툰헤임의 다른 왕이 있는 거니?”
로키는 히죽거리고는 계속 걸어갔다.
그들이 긴 복도를 더 내려간 뒤에야 한 감옥 앞에 도착했고, 로키가 감옥 안을 들여다봤을 때 그의 미소는 천천히 녹아 사라졌다. 헬블린디 라우페이슨, 왕의 장자는 무릎을 팔로 감싸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머리는 숙이고 있었으며, 눈은 감겨 있었고 호흡은 약하고 느린 숨을 쉬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아주 작은 감옥에 구치된 탓에 받는 그 분명한 고통과 불편함을 로키는 보았고— 이상하게도, 그는 거기서 복수에 불타는 만족감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단지 더 많은 죄책감이었다, 매초가 흐를 때마다 더 높이 쌓이는 죄책감.
그리고 그의 심장이 처음으로 눈앞의 이가 제 형제라는 것을 인정했다.
눈길은 바로 옆 감옥으로 이동했고, 그곳에는 그의 다른 형제, 빌레이스트가 흡사 야생의 공격성을 드러내며 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명백히 겁에 질려 있었고 긴장했으며, 공격을 가할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미 자신이 졌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러나 그 모습에서도 로키는 승리자의 기분을 맛볼 수 없었다.
“라우페이의 첫째.” 토르는 헬블린디에게 고갯짓하며 말했다. “그에게 무슨 얘기를 할 작정이야?”
그 질문을 무시하며, 로키는 병사 하나를 불렀다. “취조실을 준비해. 가장 큰 방으로. 죄수와 단독으로 얘기를 할 것이다.”
“너 내가 너와 같은 사절인 건 기억하고 있지, 응?” 토르는 도전하며 말했다.
“그러는 그대는 내가 아직 그대의 왕임은 기억하고 있겠지?” 로키는 되받아쳤다. “아니면 어젯밤 그대가 했던 제 아버지에게 맞서서 제 렐름을 구했던 이 죄수의 배신에 대해 모욕 가득 담긴 언사는? 물러서, 토르. 그댄 여기서 기다리는 게 최선일 것 같으니.”
“기이하군요, 집행을 받을 예정인 자에게 안락함을 제공해주니 말입니다.” 헬블린디는 말했다.
그는 취조실 안을 천천히 걸으며, 다리를 펴고 팔을 벌렸다. 그 커다란 요툰은 느리게 움직였으며, 내쉬는 그 호흡 또한 느릿느릿했다, 마치 지나치게 덥다는 듯이. 그의 속눈썹은 당장이라도 끓어오를 것 같은 새빨간 눈에 걸려있었다.
로키는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 냉소적인 미소를 보였다. “이러나저러나, 가족이란 게 뭐겠어?”
헬블린디는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 소리는 목이 마른 듯 갈라졌다. “네가 알고 있을지 궁금했는데. 그 얼굴은 정말로 잘 숨겼지만, 두 눈은 진실을 말해주고 있어. 우리 어머니를 무척이나 닮았구나.”
로키의 미소가 굳어졌다. “난 내가 서자인 줄로만 여기게 되었는데 말이야. 창녀, 아니 그보다 더 못한 것의 아들이라지, 우리 아비의 말에 따르자면. 얼마나 됨됨이가 좋으면, 나를 가졌다는 회임 소식마저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다니 말이야.”
“우리 어머니는 여왕이셨어,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헬블린디는 답했다. 그는 이상하게도 잠시 동안 로키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치 결정을 내리려 하는 것처럼. “네가 우리 아버지에 대해 알아야 할 게 있어. 그는 거짓말쟁이야, 그리고 네게 거대한 앙심을 품고 있지. 가능하다면 널 다시 해치려 들 거야.”
로키는 이 정보에 아무런 반응도 주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러는 너는?”
“난 너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헬블린디는 말했다. “단지 네가 우리의 땅을 공격했으며 너 자신의 인종을 증오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야.”
“나도 너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 그리고 그건 본능적 혐오일 뿐이야.”
“아니, 그건 네가 여기서 자라왔기 때문이야. 넌 자신을 우리보다 낫다고 여기고 있고.”
“모든 에시르들이 그래, 아마도. 하지만 난 내가 정확히 뭔지 알아, 그리고 내 혐오는 나를 배제할 만큼 차별적인 게 아니라서 말이지.”
헬블린디는 한쪽 입꼬리만을 올려 미소를 지었다. “왜 여기 있는 거지? 넌 이미 날 죽이기로 마음먹었잖아.”
“그래 보이나?” 로키는 제 형제의 미소를 따라 했지만, 그 입꼬리 끝에는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었다. “난 우리 아버지에 대해 더 알고 싶은데.”
“어떤 걸?”
“네게 친절했어? 네가 어렸을 적에는 어땠었지? 그리고 지금은.”
헬블린디는 양손을 들어 올렸고, 로키는 그 손짓이 요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으나 어깨를 으쓱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은 무정해, 여러 가지 일로. 그중 하나는, 아이의 상실이지.”
“그렇겠지, 분명 그 때문에 목이 아주 멨겠어. 아니면 더 많은 형제자매를 그대로 버려두었나? 수백 명쯤은 될 거야— 그들의 시체가 그 땅 위에 흩뿌려져 있을 거고.”
“그게 네가 생각하는 당시의 일인 거야? 부끄러운 이야기라면 꽤 있단다. 너에 대해 들리는 이야기들 말이다, 아우야.”
“오, 얘기해봐. 한데 엮어 문집이라도 만들게.”
“갓난아기 때 제 렐름을 배신하는 일이 가장 부끄러운 일이지. 우리 아버지는 널 그대로 버려둔 게 아니었어, 넌 그렇게 여기고 있는 것 같지만. 전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 전란 속에서 널 잃어버렸어. 널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던 신관은 죽어 있었고, 퇴각하는 며칠 동안에도 그 누구도 널 찾을 수 없었어. 우리 아버진 널 애도했어, 그리고 네 상실이 최후의 패배를 불러온 게 아닐까 해. 그러다 아스가르드 왕의 손에 있는 널 보았고, 너는 모습을 바꾸었어. 적의 살갗을 띠고 넌 그에게 매달렸지.”
로키의 눈썹이 그러당겨 올라갔다. “꼭 놈이 그 일을 다소 힘들게 받아들였다는 듯이 얘기하는군.”
“너는 말을 떼기도 전에 제 아버지와 태어난 땅을 저버렸어. 내가 너라도 우리 아버지를 믿지는 않았을 거야. 아버진 그 날 너의 이름을 부르며 저주했고 가장 무정해졌다고 볼 수 있지.”
“이건… 좀 소화하긴 힘든 양이야.”
헬블린디는 그에게 눈을 깜빡였다. “소화? 뭘 먹었길래?”
“얘기 말이야. 비유라고. 음식을 소화하는 것처럼 네가 한 말을 충분히 생각해본다는 의미.”
“음식에는 배설물이 뒤따라. 그다지 좋은 비유는 아닌 것 같구나, 아우야.”
로키는 고개를 슬쩍 숙였다. “잘 새겨넣지.”
헬블린디는 앉는 걸 내켜 하지 않는다는 듯이 혹은 제 무게를 의자가 버티지 못할 걱정이라도 있다는 듯이 벽에 기대섰다. “태생에 대해서는 뭐라 얘기 들었어?”
“단지 신전에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는 것뿐.”
“그것도 분명 사실이야, 다만 네 버려짐은 방치라기보다는 전쟁의 결과였어. 내 생각이지만 우리 아버진 네 배신을 우리보다 더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았지. 넌 그때 너무 작았고 전쟁의 공포가 가득한 와중에 태어났어. 우리 어머니가 전사하셨고, 그 일이 널 바꾸었지. 넌 불안해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붙어 있으려 했어. 넌 생존을 위해 계책을 썼던 거고, 전시에 자란 나로서는 널 그 때문에 비난하지는 않아.”
로키는 그를 응시했다. 코로 숨을 들이켜기를 몇 번, 그리고는 물었다. “지금 내게 거짓말하는 거야?”
헬블린디는 다시 양손을 들어 올렸다. “무슨 목적으로? 넌 네 태생의 땅을 신경 쓰지 않아, 그와 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들 또한 관심 없지. 넌 내가 무얼 말하든 날 죽일 거잖아.”
“아무래도 넌 내 의향에 대해 이미 아주 확고한 의견을 지닌 것 같아. 이상하군, 넌 날 거의 알지도 못한다고 자인했었는데 말이야.”
“너는 생존자야. 그리고 네가 나를 죽이지 않으면, 이곳에서의 네 자리를 잃을 수도 있어. 아스가르드의 왕은 네 태생에 대해 알아. 네가 우리 편을 든다면 그의 마음속에 의심의 싹을 틔우게 될 거야.”
“이 내가 아스가르드의 왕이야.” 로키는 그에게 상기시켰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신의 인정을 얻고자 노력하는 짓 따위 하지 않아. 더는. 불가능하고, 미친 노릇 따위.”
“여기 있는 게 행복하지 않은 거냐, 아우야?”
로키는 그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제 머리를 쓸어 넘기는 손가락들의 느낌을 떠올리며, 사랑과 안전의 속삭임들을 상기했다. “누릴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어. 내가 어머니라 부르는 여자는 매우 친절해. 그리고 내게 형제가 하나 있지.” 그의 눈길이 테이블 쪽으로 떨어졌다.
“네가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그냥 ‘끔찍’이란 단어는 그자의 명예에서 탄생한다고 해두자고.”
헬블린디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탄생? 너 그자와 동침하는 거니?”
“어, 아니. 아니, 안 해. 내 말은 단어의 유래라는 의미였어.”
“또 다른 조잡한 비유구나, 아우야. 아까보다 더 질이 나빠.”
“그것도, 새겨넣지.”
“그리고 네가 아버지라 부르는 자를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야.” 헬블린디는 말했다.
“제 아버지를 적에게 팔아넘기는 것보다도 부끄러운 짓이라고?” 하고 로키는 물었다. “넌 놈을 억지로 내 앞에 꿇게 했잖아.”
헬블린디의 대답은, 후회의 기색 하나 없이 튀어나왔다. “그가 먼저 우리 사람을 배신했어, 그들이 받는 고통을 무시했지. 내 행동은 명예로운 행동이었어. 내 아버지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더라도, 재판에 서게 될 거야. 그 목숨으로 죗값을 물게 되겠지. 네가 오늘 거행하는 일은 우리가 하게 될 일이나 다름없어.”
“라우페이는 왕이잖아. 요툰헤임의 누가 그런 판결을 내릴 만큼 높은 위치에 있을 수 있단 거지?”
헬블린디는 고개를 저었다. “네 말을 이해 못 하겠구나. 그는 더는 왕이 아니야. 네 앞에 무릎 꿇었으니까. 우리 모두 그랬지.”
“뭐라고? 따라가질 못하겠는데.”
“네가 우리의 왕이야.” 헬블린디는 그것이 가장 이 세상에서 명확한 것이라는 듯이 말했다. “우리가 왜 널 로키 왕이라 부르며 무릎 꿇고 우리 렐름에 자비를 베풀어 달라 했겠어? 널 아스가르드의 왕이나 그게 아니면 간단히 네 이름으로 호칭할 수도 있었는데. 그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네 앞에 무릎 꿇기를 주저했었지. 그래도 그 주저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어. 진정한 왕은 제 렐름을 위해 제 왕위도 희생할 수 있어야 해. 더 쉽게 말하자면, 내가 그에게서 왕관을 가져와 네게 건내 줬던 거지.”
“그거.” 로키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는 테이블 위로 부츠를 신은 발을 올려 꼬았다. “정말 구미 당기는 얘기로군.”
“왕께서 행차하신다, 길을 터라!” 병사가 소리쳤다.
이제는 정오였으며, 시간은 죄수들이 재판을 받을 때가 되었다. 로키는 알현실 쪽으로 미끄러지듯 걸어갔으며, 그의 눈길은 수평을 똑바로 향해있었다. 그는 그 누구의 얼굴도 보지 않기 위해 조심했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그도 느꼈다.
알현실은 터질 정도로 잔뜩 몰린 군중들로 가득 찼으며, 그 물결이 홀 밖으로까지 이어졌다. 헤임달은 출구 뒤쪽에 서서 표정 없이 지켜보고 있었으며, 그의 양손은 칼자루 위에 올려져 있었다. 시프와 워리어스 쓰리 옆에 자리한 토르는, 이 군중들의 맨 선두에서 기다리며 로키와 마주 서고 있었다. 로키의 뒤로, 그 그림자가 드리우는 자리에서 조용히 서 있는 프리가와 오딘이 있었다.
그는 정말로 그 누구도 쳐다보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었다.
기다리던 국민들은 로키의 등장에 다소 조용해졌지만, 웅성거림은 곧 요툰 죄수들이 끌려들어 오자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수는 총 다섯이었다. 라우페이가 그 앞에 서 있었고 그 뒤로 두 아들이, 침입 중에 죽지 않았던 두 명의 전사들과 함께 서 있었다. 그들의 손은 사슬과 함께 묶여 있었으며, 입에는 재갈이 채워져 있었다. 병사들이 그들을 사방에서 포위하며, 무기를 꺼내 들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거인들의 신장과 크기는 대중들을 불안하게 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방어적 자세는 점점 진해졌다.
로키가 라우페이에게 시선을 고정하자 중얼거림은 고함으로 바뀌었다. 그는 미소지었다. 두 명의 왕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로 이 체스판 위에서.
고함은 너무나도 커다래 로키의 귀를 울렸다. 아스가르드의 사람들은 피를 원했다. 그들은 요툰 왕과 그의 아들들이 이곳에 자리한다는 사실에 아주 흥분했다. 그들은 이 파손된 궁전의 벽에서 떨어지는 먼지와 잔해 속에서도 대단히 즐거워하고 있었다— 마침내 복수하게 될 거라는 사실에. 전쟁이 있을 거라는 사실에. 괴물들의 끝을 보게 될 거라는 사실에. 그들은 죄수들에게 악담을 내뱉었고, 로키는 참을성 있게 내뱉음을 하나하나 들으며, 그 모욕적 언사가 저에게도 해당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살인자들, 그들이 소리쳤다.
(그래. 우린 살인자야. 또 뭐라 외칠 거지?)
로키는 건틀릿 아래의 소맷자락을 끌어당기며, 저들이 그의 조용한 질문에 외침으로 답하자 그는 숨죽여 낄낄댔다. 일이 재밌게 돌아가겠어.
“요툰헤임의 라우페이.” 로키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커다란 소리로 말했다. 그에 응답하듯 웅성거림은 약해졌다. “그대는 우리와의 협약을 깨트렸다. 그에 변호할 말은 아무것도 없는가?”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라우페이가 재갈이 채워져 있으매.
로키도 그들과 함께 웃었고, 배역을 연기하며 쇼를 개막했다. “그대가 오늘 침묵하게 된 것은, 이는 재판이 아니기 때문이지. 이는 판결 선고이다. 우리가 그대를 공격했을 때 나는 요툰헤임에 있었으며, 그대가 우리를 공격했을 때 나는 아스가르드에 있었다. 그에 관해 증언을 들을 필요도 없으며, 듣는다 하여도 내 마음은 변함없다 할 것이다.”
군중들은 동의를 중얼댔다. 눈들이 로키의 굳고 용서 않는 어조에 격렬한 찬성을 표하듯 빛났다. 다른 상황에서라면 그 어조가 담고 있는 것을 달갑다 하지 않을 테지만, 천적인 요툰을 향한 왕의 수그러들지 않는 그 진노만은 그들이 자부심을 품고 맹신할 수 있었다.
라우페이는, 배신자 꼬마 녀석에게서 더 나은 걸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재갈 뒤에서 로키를 향해 빈정댔다.
로키는 유쾌하게 미소로 되받아쳤다. 그는 군중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말하였다. “이 내가 양측의 증인으로서 그 의무를 지니기 때문에, 공정히 대할 것이며 이곳에 자리한 모두에게 아스가르드 또한, 요툰헤임이 수 세기 동안 평화적으로 유지해온 조약을 어겼음을 알린다. 우리는 저들의 렐름에 해를 가할 목적으로 들어갔으며, 그 달성에 있어 우리는 저들이 이곳에서 거둔 성과보다 더 많은 성과를 얻었다 할 것이다.”
사람들이 중얼댔다. 그들은 공정히 대할 것이라는 로키의 의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직 그가 말을 다 하지 않은 것 또한 감지했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와 함께 맺었던 바로 그 조약의 세부 조항에 따른 절차대로 평화적으로 배상을 청구하는 대신에 우리를 공격할 것을 택했다.” 하고 로키는 말했다. “그리고 그대는 사사로움에 따라 행동했으며, 그 사사로움이란— 우리가 잠든 틈을 타 한밤중에 그대의 군대를 진군하고 들어왔음을 말하며, 권고 조치는 물론,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대담을 가지려는 시도가 없었음을 말한다. 그대의 렐름에 공격 개시를 명하기 전에 우리가 시도한 대화마저도 거부하였다. 더 나아가, 그대는 그대와 함께 수세기의 평화를 조율해왔던 아버지신의 생명을 위협했다. 더구나 이 내게 어쩌면 가장 중하다 할 수 있는 일은 그대가 가장 총애받는 여왕에게 또한 상해를 입힌 일이다. 오, 라우페이. 그대는 이렇게 잡히지 말았어야 했다. 내 가족을 감히 건드리고도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대의 목숨을 앗아가는데 이 내가 주저할 거라고 그대는 정말로 생각했나?”
그는 대중들이 동의를 표하며 일어서는 동안 라우페이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그렇다, 내가 그대의 선고형으로 무엇을 정할지는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말해주마, 너는 죽을 거라고. 하나, 이는 사사로운 일이 아니지. 나는 아스가르드의 왕위에 오르기 전에 서언을 맹세하였다. 내 개인적 야심과 욕심을 버릴 것을. 이 나인 렐름을 수호하며 평화를 지킬 것을 맹세하였다. 하지만 나는 이 자리에서 평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대들은 어떠한가?”
로키는 제 말이 군중들에게 충분히 박힐 수 있도록 잠깐 멈추었다. 그는 그들 모두가 증오스러웠다. 그런 그들의 정신을 흔들어버리는 일은 기쁨이었다.
“아스가르드의 백성들은 이 렐름에 했던 서약들을 잊어왔다.” 그는 계속했다. “서약들은 다양한 형태로 바뀌어 우리가 하는 서언 각각이 되지. 나는 그것들을 바로 이 자리의 개개인들이 저들의 왕으로서 나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 들었다. 나는 그것들을 혼인을 약속하는 자리에서도 장례를 치르는 자리에서도 들어왔다. 나는 그것들을 소년 시절 학교에서 암송했으며 내 형제와 놀이에서 외치기도 했다. 그 서언들은 진정한 아스가르드의 국민들에게는 전부이다, 그런데도 나는 궁금하군. 이 자리에서 무엇을 맹세하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되는가? 라우페이, 그대는 참으로 운이 좋다. 오늘 그대를 심판하는 사람은, 그대의 목에서 그 머리를 벌써 잘라냈을, 로키 오딘슨이 아니기 때문이지. 나는 이름이 없으며 나 자신 또한 없다. 단지 내 백성들에게 맹세했던 서언이지. 나는 더는 로키 오딘슨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대의 앞에 아스가르드의 왕으로서 서 있는 것이다.”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대의 아들 중 한 명에게서 아주 흥미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로키는 말했다. “내가 그대의 자유를 박탈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대가 내게 몸 낮춰 절했기 때문에, 나는 또한 요툰헤임의 왕이니라.”
군중들은 안절부절 움찍거렸다. 머리들을 숙이고 속닥였다. 로키의 시선이 토르를 잡았고, 제 형은 입을 벌리고 굳어진 채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로키는 집중력과 담력을 잃기 전에 재빨리 눈길을 돌렸다.
라우페이의 두 아들이 무릎을 꿇었고, 그 뒤에 있던 전사들도 시선을 교환하고는 따라 꿇었다. 이는 예정된 행위였다, 보여주기 위한. 로키와 헬블린디가 비밀리에 계획한 연극. 오직 라우페이만이 서 있는 채로 여전히 로키를 노려보며 제 혐오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도 자신 뒤로 반역 행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속삭임이 밀려들며 다시 중얼거림의 바다를 만들었다. 군중들은 이 상황을 이해했으며, 이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천적이 그들의 왕 앞에 절하는 광경에 쾌락을 누렸다.
“저들의 재갈을 풀어라.” 로키는 병사 하나에게 명했다. “단 두 아들만. 나는 저들이 무엇을 말할지 듣고 싶다. 라우페이의 아들들이여, 어째서 무릎을 꿇는가?”
“저희는 저희의 왕인 당신께 경의를 표하기 때문입니다.” 헬블린디는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자 그리 고했다. 이는, 역시, 예정된 말이었다.
로키의 시선이 어린 왕자에게로 휙 움직였다. “그리고 그대, 빌레이스트 라우페이슨? 그대의 충성심은 어디에 있는가?”
나 자신에게, 그 왕자의 시선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요툰헤임의 왕께 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로키의 미소가 커졌다. “그리고 그대들의 왕은 누구인가?”
“당신입니다.” 그들이 일제히 말했다.
알현실에 자리한 사람들은 이 상황이 기뻤다. 라우페이의 혈족이 몸을 낮춰, 그를 저들의 왕이라고 두 번씩이나 선언하는 모습에 기뻤다. 로키가 그들을 위해 쇼를 열었으며, 그들은 성원으로 그리고 찬동의 표정들로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이전만큼 열광적이지는 않았다. 맹세에 관한 로키의 일깨움이 그들의 피를 향한 굶주림을 다소 잠재운듯했다.
“아, 그대들이 그리 말할 줄 알았다.” 로키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대들의 왕에게 말해보아라— 이곳 아스가르드에 무슨 목적으로 왔는가? 내가 그대 중 한 명이 아니기에, 나는 증인이 되지 못한다.”
“아버지께서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헬블린디는 말했다. “한밤중에 아버지신을 베어 버리고 고대 얼음의 궤를 되찾라고 명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당신과 바로 대면하여 협의할 시도를 먼저 하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짓이었죠. 저희는 라우페이에게 복종하여 행동했습니다. 그가 저희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왕이 아닙니다.”
“맙소사, 그대는 지금 왕에게 복종한다는 서언을 지킬 의무가 없었다면 이런 식으로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을 하는 것인가?” 로키가 물었다.
“그랬더라면 저희는 공격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희는 아스가르드와 조약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헬블린디는 말했다. “요툰헤임에 대해 당신께 아뢸 수 있게 해주십시오, 로키 왕이시여. 저희에게는 명예가 있으며 맹렬한 충성심이 있으며 렐름에 대한 애정이 있습니다. 복수와 피를 갈망하던 사람은 저의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진 아버지신에게 많은 원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평화의 시대를 선호합니다. 저희는 그저 충의에 따라 그를 따랐을 뿐입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어째서 그대는 그를 팔아넘긴 것인가?”
“그가 저희에게 다짐했던 충의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헬블린디는 말했다. “당신의 말씀대로, 진정한 왕을 사사로운 야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오직 렐름에 맹세한 서언뿐이죠. 저희의 서언은 아스가르드의 서언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로키 왕이시여. 아버지는 백성들에게 서약한 것을 잊었으며 자신의 렐름을 구하고자 당신께 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동생과 저는 그 의무를 다시금 알려준 것이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요툰헤임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게 된다면, 가장 중한 판결을 받게 될 겁니다. 그는 반역자이며 죽음을 얻었으니까요.”
로키는 눈썹을 추켜세우고는 군중들 앞을 아주 잠깐 왔다 갔다 했다. “이거, 대단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 그대가 말한 서언 말이지. 요툰헤임과 아스가르드는 아무래도 아주 유사한 믿음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군. 솔직히 말해, 난 놀랐다, 자격 없는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싫증이 나게 되면 왕업의 진실마저도 오래도록 못 본 체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어. 그러니 다행 아닌가, 요툰헤임에 이제 새 지도자가 생겼으니. 그러고 보니 그 지도자는 이제 나지.” 로키의 입이 가로 째졌고, 금방이라도 웃어 재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얼어붙은 황무지를 다스릴 수 있는 체질이 아니라서.”
아스가르드의 국민들은 함께 웃지 않았다. 그들은 얼굴에 혼란만을 담고 있었다. 반대로 로키는 이 상황이 즐겁기만 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왕이라 했다.” 그는 계속했다. “그렇다면 다른 이에게 왕위를 넘기는 것은 나의 권리로군. 헬블린디 라우페이슨, 나는 오늘 그대에게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답례로, 그대에게 알려주게 해다오, 아스가르드에 대해서, 조약들에 받친 우리의 서언들과 명예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여기 그대는 내 앞에 무릎 꿇었다, 하지만 이제 그대들의 전통에 따라 그대가 일어설 것을 청한다. 그리고 그대에게 부여된 권리를 받아들어라.” 로키는 라우페이를 궁니르로 가리켰다. “그리고 그대는 그 무릎을 당장 꿇어라, 그리 하지 않으면 내가 그 다리들을 없애버리고 싶어질 테니.”
결국에는, 그 마지못한 항복을 받아낼 때까지 세 명의 병사가 그의 목에 창을 겨누고 있어야 했지만, 라우페이는 무릎 꿇었다. 대중들의 노염이 라우페이를 향해 옮겨갔고 그를 제외한 다른 요툰들에게서는 멀어져갔다, 딱 로키의 의도대로였다. 그리고는 그들은 바라봤다, 로키가 요툰헤임의 왕권을 넘겨주며, 그가 아스가르드에 했던 맹세를 그대로 읊으며 헬블린디에게 맹세하냐고 묻는 모습을. 헬블린디는 대답에 아무런 주저 없었다.
“이를 받아 나는 그대를 요툰헤임의 헬블린디 왕이라 명한다.” 로키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대에게 절하지는 않겠소, 우리는 이제 대등하기 때문이오. 우리는 목적이 같으며, 각자의 렐름에 같은 서언을 맹세한 형제이며 여기 있는 모두가 그러하오. 자 헬블린디 왕이여, 내 이미 언급한 것 같소만 우리의 평화 조약에서 가장 흥미로운 구절은 우리에게 이런 상황들을 안겨줬다는 부분이오.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를 공격한 것에 대해 피차 배상의 책임이 있는 것 같소. 그대는 이 말에 동의하오, 아니면 이 성가신 조약 따위는 함께 치워버리는 게 낫겠소?”
“우리는 그대의 렐름과 맺은 조약을 유지할 거요.” 헬블린디가 말했다. “내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에게는 명예가 있으니 말이오.”
로키는 말없이 손가락들을 접었다, 제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조롱의 의미를 담아. “이것 참, 서로를 공격한 횟수가 짝으로만 떨어지는군. 아무래도 벌써 상쇄되었다는 얘긴 것 같은데. 어떤 것 같소 그대는?”
군중들이 화를 내며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침내 로키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대의 말대로오, 아스가르드의 왕이여.” 헬블린디는 그들을 무시하며 침착하게 답했다.
“자, 아무래도 이 문제는 종결 난 것 같군, 그렇다면.” 하고 로키는 말했다. “그대는 자유요, 요툰헤임의 왕이여. 미래의 평화에 대한 바람의 표시로 난 그대의 아버지와 다른 죄수들을 풀어주겠소, 그리고 그대는 그 표시로 우리의 렐름을 떠나서 더 이상의 침략을 그만둘 것을 청하오. 만약 라우페이가 국사범으로 그대의 심판 아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면, 그렇게 하시오. 그가 요툰헤임에 저지른 잘못들은 아스가르드에 저지른 행동보다 더 심하다 할 수 있소. 심판의 권리를 그대에게서 뺏지는 않을 거요.”
“바로 오늘 재판을 받게 될 거요.” 헬블린디의 말은 사람들의 커지는 불평에 거의 묻힐 듯 했다.
“레이디 시프, 헤임달— 사람들을 충분히 모아서 우리의 요툰 지인들이 바이프로스트까지 평화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그리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호위해주게.” 로키는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높여 말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머지 그대들에게 청한다, 아스가르드의 국민들이여—.” 그는 침묵이 다시 가라앉을 때까지 궁니르 끝으로 바닥을 두들겼다. “나는 그대들이 잠시 동안 그대로 서서 이 렐름에 했던 서언들을 되돌아볼 것을 바란다. 그대들의 명예에 대해 떠올려보며, 그리고 우리가 언약했던 상대에게 손을 들어 올리게 되는 일은 아스가르드를 그리고 평화 그 자체를 배신한 자와 다름없다는 걸 명심해라. 나의 백성들이여, 이제 우리의 손님들에게 아스가르드만의 진실성을 보여주지 않겠나.”
완전한 침묵만이 흘렀다.
로키는 실망에 가까운 기분을 느꼈다. 손가락에 경련이 일다시피 궁니르를 움켜잡으며, 반대의 첫 외침이 터져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고, 요툰들은 평화 속에서 떠날 수 있었다.
아버지신은 알현실 뒤에 위치한 회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딘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는 제 아이가 훌쩍이던 바로 몇 시간 전과 다름없는 표정으로 로키를 보았다. “로키.” 그가 환영하듯 말했다.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로키는 멈춰 서서 나머지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의 입은 경직되어 일자로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난 네가 왕으로서 내린 포고에 대해 아무런 판단도 않겠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말을 지킬 거다.” 오딘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 아버지로서, 이건 꼭 말해야겠어. 난 네가 정말로 자랑스럽구나.”
차가운 노염으로 일관하던 로키의 표정이 터질 듯이 격분하며 일그러졌다. “오, 닥쳐요.” 그는 아버지신의 손에 궁니르를 들이밀듯 돌려주고는 성큼 걸어가며 어깨너머로 말했다. “당신 때문에 한 일이 아니니까.”
> TBC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제가 사랑합니다!
(PS - 형 때문에 그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