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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번역/글

[Thor/번역] 거래(10)

쿠밀 2017. 11. 1. 22:33

※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


원문: Barga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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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Bargaining





written by proantagonist

translated by windmill





chapter 10


아버지신의 결별의 말은 토르의 매일을 신경 쓰이게 했다.


아버지는 왕좌를 저버린 토르를 너무나도 쉽게 아스가르드에서 떠나보냈다. 무얼 어쨌든, 그는 대역죄를 범했으며, 대역에 다른 사람들마저 끌어들였다. 로키의 도주를 돕기까지 했으며, 직후 그 동생을 희생시키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그가 제인을 아스가르드로 데려오는 바람에 어머니가 목숨을 잃은 지 채 얼마 되지도 않아서.


아버지신은 로키의 부고를 듣고도 특별히 마음이 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토르에게, 그 반응은 여태껏 나온 것 중 가장 이상한 것이었다. 그는 일전에 로키의 죽음에 아버지가 비탄에 잠긴 것을 보았었다. 그래서 이 반응은 다르다. 이 반응은 냉담이었으며 그릇되었다. 그 어느 하나 조금도 말이 되지 않았다.


토르는 며칠을 자리에 앉아, 밥도 잠도 거의 잊은 채 이 문제를 고민했다. 제인은 큰 슬픔에 잠긴 그를 도우려 최선을 다했지만, 그는 좀처럼 타협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는 무언가를 어디선가 놓쳤다. 그렇게 확신했다. 그는 제가 발견한 이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좋아지기보다는 오히려 악화하고 있었다.




로키는 그대로 몸을 굳혔다.


미드가르드에서 느꼈던 감각과 같은 것이었다. 그의 형이 하늘에서 툭 떨어져서는, 예견된 노여움을 가득 띄운 얼굴로 로키 그의 목을 잡아채 인간들의 비행기에서 끄집어냈을 때처럼. 그 일은 다른 시간대와 다른 장소였지만, 상관없었다. 로키는 복수심에 불타는 폭풍을 올려다보는 어린아이처럼 여전히 무력했다. 그는 도망쳐야 할지 이 장엄함을 계속해 쳐다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죽음일지.


"내가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말이야." 토르는 속 편한 웃음소리로 말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도착으로 보이는 시프의 냉담한 한마디에 대답한 그였지만, 눈은 로키에게 머물러 있었다. 로키는 몸을 움직이지도 눈을 깜박이지도 말하지도 않고 있었다. 토르의 웃는 빛이 조금 희미해졌다. "나도 노력했어. 나도 노력했단 걸 알잖니." 그 말은 그 어린 동생에게 향한 것이었다.


로키는 제 눈이 연민의 감상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각각의 천 가지 다른 감정들이 한데 모여 그의 목을 단단히 억누르고 있음을. 그는 떨림을 멈추려 입술을 꽉 다물었다.


(그런 거 난 몰라.)


"그러면 왜 이제야 온 거지?" 시프는 물었다. "설마 아스가르드가 공격받고 있다고 들어서? 네 부모님이 침실에서 거의 돌아가실 뻔해서? 그게 마침내 이 렐름에서의 네 의무가 뭔지 깨닫게 해주기라도 했나 보지?"


토르의 동요 없는 표정은 그가 이미 부모님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로키를 떠나 어깨너머를 바라보았다. 라우페이가 감옥에서 몸을 쭈그린 채 그들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토르의 눈에는 경멸적인 시선이, 마치 일말의 관심도 받을 만 한 것이 없다는 시선이, 잠시지만 자리했다. "아니." 토르는 라우페이가 엿듣지 못하도록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며 말했다. "망루에 도착할 때까지 습격이 있었다는 걸 몰랐어. 나는 로키의 비명을 들었기 때문에 여기에 온 거야."


시프는 머리를 한번 가로 젓고는, 혼란스러움에 눈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야?"


"모두가 그를 들었어. 정확히는, 미드가르드에 있는 모두가. 그 때문에 혼란 상태였고, 나는 빠르게 집으로 올 수 없었어."


"그건 말도 안되는 말이야." 시프가 말했다. "로키는 미드가르드에 있지 않았어. 그는 여기 있었어. 나와 함께 우리의 집을 수호했다고. 없이, 굳이 덧붙이자면."


"난 내 동생의 목소리를 안다네, 시프."


그리고 다시 토르는 로키를 그 투명하고도 희망찬 푸른 눈으로 쳐다봤다. 그의 시선은 의문들을 담았지만, 또한 따스함과 보호 그리고 안식처를 약속하고 있었다. 그 시선은 로키가 만든 분노의 벽을 사정없이 부수어, 그를 노출하고 취약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의 안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억눌려 있어 분류하는 일조차도 어려웠다.


그것 중 대부분은, 왜 제 형이 그의 목을 잡아채어 끝없는 무의 가장자리로 끌어내지 않을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묘한 순간 동안, 토르의 눈은 궁니르에 머물러 있었다. 로키는 마치 그것을 숨기려 드는 사람처럼 제 등 뒤로 궁니르를 쥐었다. 그는 제가 왜 이러는지도 알지 못했으며, 혹은 토르가 제 행동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곧 그 순간이 지났으며, 토르가 더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는 목의 가장자리와 닿아있는 어깨에 손을 올릴 뿐이었다. 로키는 움츠렸다. 그것은 익숙한 몸짓이었지만, 목을 움켜잡기에도 아주 가까운 거리였음을 그는 깨달았다.


"내게 화가 났다는 거 안다, 그럴 거야." 토르가 말했다. "넌 당연히 그래도 돼. 내가 정말 미안하다, 동생아. 나는 네가 너무 많은 짐을 혼자 이곳에서 짊어지도록 내버려 두었어."


공기가 로키의 폐 밖으로 한바탕 빠져나왔다. "난 널 증오해." 그는 내뱉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나아가려 했지만, 곧장 토르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궁니르는 바닥에 덜컹거리며 떨어졌고, 이내 잦아들었다. "네 팔다리를 뽑아버리고 싶어." 로키는 제 이마를 토르의 어깨에 파묻으며 말했다. 그의 손톱을 제 형의 등에 화내듯 찔러 넣었다. "그 사지로 네가 죽을 때까지 패버릴 거라고."


말은 상처에서 독처럼 쏟아져 나왔고, 그는 제 평생 무언가를 그렇게 많이 뜻 담아 말한 적은 결코 없었다.


하지만 이 포옹은,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를 느리지만 편안하게 했으며, 진심이 되게도 했다.


토르의 강함은 그에게 닻과 같았다. 그를 침착하게 했으며, 그는 어떻게 숨을 쉬었는지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로키는 이것이 그가 이 과거로 돌아온 이유였다. 그래서 이것이 절대로 죽지 않도록. 왜냐하면, 태양이 없다면 모든 것이 죽을 게 당연했다.


토르는 웃음을 터뜨렸다. 제 동생을 으스러질 듯 세게 껴안으며 등을 두드렸다. "네가 그 영광을 차지하려면 레이디 시프와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시프는 팔짱을 낀 채 그들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조금 전과 한치도 바뀐 게 없었다. "네놈 팔다리는 네 개니, 나누어 가지고도 남아."


토르는 다시 크게 웃고는, 몸을 뒤로 빼 로키의 어깨를 그러잡았다. 토르의 눈은 번뜩였으며, 심지어 이 지하감옥의 어둠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제 여기 내가 있어, 로키. 그리고 문제들을 바로 잡을 것을 맹세하마. 나는 바뀌었고, 이제 시각이 열렸어. 너도 곧 알 수 있을 거다."


로키는 목이 옥죄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토르는 바뀌었다. 미드가르드는 단순히 그를 유약하게만 만든 것이 아니었다. 독선적이며 판단에만 사로잡힌 바보가 되어있었다. 대단하고도 강력한 위선자가. 로키는 머지않아 이 특성이 추악한 고개를 쳐들 것을 알았다.


"여기서 요툰헤임과 있었던 일 모두 내 잘못이다." 토르가 말했다. "그리고 이 괴물들이 저지른 일에 처벌도 받지 않고 가게는 두지 않을 거다. 내가 맹세해."


"아, 위선자가 여기 있었어." 로키는 심장부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내 오랜 친구. 토르, 여전히 네 중심적이라 난 정말 안심이라네. 난 다른 너는 잘 몰라서 말이야."


토르는 미소를 조금 흩트렸으며, 마치 제 동생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사람인 양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다 로키의 머리칼을 헝클고는 장난스럽게 밀었다. "너 정말로 날 싫어하는 건 아니지, 그렇지, 동생아?"


"사랑할 뿐이지." 로키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는 손에 궁니르를 소환하고는 그 차가운 금속을 손가락으로 강하게 붙잡았다. "형."




그들은 궁전을 함께 걸어갔다. 토르는 길을 이끌었고 시프는 그 옆에 섰으며, 로키는 조금 뒤로 떨어져 있었다. 그는 그들과 보폭을 맞추었지만, 그들이 나란히 걷어 가기에는 공간이 충분했던 적은 없었다.


"로키의 비명 때문이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아직 모르겠어." 시프가 말했다. "정말 미드가르드에서 들었다는 게 맞아?"


"그렇다네, 들었어." 토르는 어깨너머로 로키에게 고갯짓했다. "레이디 달시가 네게 전해달라는군. 짹짹거리는 새가 있는 거미줄-집에서 네가 트렌드라고. 그렇지만 난 대체 어떤 종류의 새가 둥지를 짓는 대신 거미줄을 치는지 아직도 모르겠네. 인간들은 당혹스러워."


로키는 대체 제 형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지 따지기 위해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곧 토르 역시 모를 거라는 걸 깨닫고는 질문을 삼켰다. "난 부른 적 결코 없어, 토르. 비명 지른 적 없다고. 네가 날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나는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니야."


"그런 종류의 비명이 아니었어." 토르가 말했다. "딱 한 마디였지."


로키는 잠깐 무슨 말인지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다 웃음 지었다. 조금 저 자신에게 감명되었다. 그는 궁니르의 힘으로 명을 내렸었고, 그것은 제 상상보다 더 멀리까지 뻗어 나갔었다.


"그래서 미드가르드의 인간들은 명을 따랐던가?" 로키는 잠시간 더 크게 미소지으며 물었다.


"그게, 어—그들 관습이 아니라서 말이다. 무릎 꿇는 거."


"그렇다면 그 명의 무엇이 특별했기 때문에 네가 묠니르를 쟁취할 수 있던 거지?" 로키는 물었다. "설마 내가 렐름에 파멸을 가져올 거라 걱정했나?"


시프는 느리게 한숨 쉬었다. "또 시작이군."


토르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제 동생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내가 여기 온 건. 만약 네가 그 명을 내려야만 했던 상황이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네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넌 꽤 필사적이었어, 로키. 전혀 너 같지 않았지. 그건 마치...." 그는 그 단어를 말하고 싶지 않은 듯 말을 멈추었다.


로키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 마무리를 대신해 생각했다.


(미치광이.)


"나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전혀 알 길이 없었어." 토르가 말했다. "나는 네가 다쳤는지도 위험에 빠져있는지도 알지 못했어. 그리고 네게 갈 수도 없다는 걸 자각했을 때, 내가 느낀 무력감을 너는 상상도 못 할 거다. 그때 묠니르가 내게 온 거야. 왜 갑작스레 내가 가치를 증명했다고 여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자기중심적이라고 했지. 어쩌면 그게 이유일지도 몰라. 왜냐하면, 네게 단언해 로키, 내 망치를 다시 들어 올렸을 때 난 오직 네 생각만 했기 때문이다."


로키는 제 형의 눈길을 마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궁니르를 꽉 쥐어 새하얀 제 손가락들을 바라보았다. 아직 독에 오염되지 않은 심장부에서는 토르가 한 말을 죽을 정도로 믿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자기 혐오로 점철된 심장부는 그 말을 거부했다. "내게서 무슨 말을 예상했는지 모르겠군. 단 한 번 날 앞세웠다고 해서, 평생 굴욕을 당한 걸 보상해주지는 않아."


"로키, 그건 부당한 말이야." 시프가 말했다. "네 형은 가끔 우리 모두를 내버려 두기는 했지만, 절대 비열하지는 않았어."


(분수를 알아라고 명령했을 때조차도 아니라고? 내 가벼운 상상이라고 비웃음 지었을 때 조차도?)


하지만 로키는 이 생각들에 목소리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결국 자기를 방어하는 일은 잘못이란 걸 체득했기 때문이었다. 분노를 담아두는 것만이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쳐 체득한 유일한 방법. 그리고 이 부당성이라는 익숙한 유혹에 굴해졌다는 사실에, 그는 제 맥박이 빨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제 손에는 궁니르가 있었고 가소로울 만큼 적은 힘으로도 그 둘 모두를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그는 이 일이, 공격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일이 이 정도로 어려울 줄은 짐작도 못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 편이 안전했으므로.


"내가 과거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로키." 토르가 말했다. "과거를 옳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로키는 제 형을 바라보다 문득 제 과거 역시 바뀔 수는 있는지 의문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불안할 정도로 익숙한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할 수는 있지." 하고 토르는 말을 이었다. "여기서. 지금. 시프, 내 맹세의 증인이 되어주게."


그러고는 토르는 로키 앞에 무릎 하나를 꿇었다. 복도 한복판에서. 이 모든 게 끔찍이도 잘못되어 보였다.


"토르, 제발. 일어나."


"로키 오딘슨 당신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만 해." 로키는 토르의 어깨를 붙잡고는 밀었다. 그리고는 궁니르를 그의 면전에 들이밀었다. " 마땅한 네 권리였어. 받아."


(닥쳐 닥쳐 네 옥좌야 네 권리라고 그가 아니라)


(이걸 받아가지 않으면 언젠가 내가 이걸로 그를 죽여버릴 거야. 그러니 너야말로 닥치고나 있어.)


"무슨 소릴 하는 게냐?" 토르가 말했다. "그건 네 권리이기도 해."


(그래그래 맞아)


로키는 눈을 질끈 감고는, 쫓아오는 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토르의 말을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싶으면서도, 그는 그만큼의 거짓말쟁이는 될 수 없었다. "이건 옳지 않아."


"로키, 네가 그렇게 말해주어 기뻐." 토르가 말했다. "너는 내 처음이자 가장 믿을 만 한 친구지. 하지만 네가 지금 내게 고갤 숙이는 걸 지켜보기만 한다면, 나는 네 사랑이나 애정을 받을 자격이 없어. 동생아— 맹세를 끝맺게 해줘."


그리고 로키는 둔해진 (기쁜) 마음으로, 토르가 다시금 무릎 꿇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저의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상관없어." 로키는 그 뒤 제게 중얼거렸다. "아버지신이 곧 깨어나. 내게 한 맹세도 오늘 밤이면 끝날 테지."




시간이 흘러, 토르의 침실에 단둘만 남겨졌다. 밖에서는 막 동이 트고 있었지만, 무거운 커튼이 창 전체를 드리우고 있었고 방의 모든 것이 부드러운 어둠 속에 머물렀다.


로키는 토르의 거대한 벽난로 근처의 쿠션이 깔린 자리에서, 왕자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한 일련의 사람들이 오갈 동안,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워리어스 쓰리는 토르를 뒤따라 바로 도착했지만, 그들이 헤임달을 부르기 전에 짐을 가득 싸 오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았다. 그들은 미드가르드에서 음식들과 자질구레한 장신구들을 한 아름 들고 왔다. 그들은 그것들이 마치 보물인 양 나눠주었으며, 시프는 그들에게 궁전을 침입했던 요툰헤임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그들은 이제 가고 없었으며, 프리가 역시 아이들의 관자놀이에 작별 입맞춤을 하고 마저 떠났다. 그러나 방 안에는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 했다. 그들 둘 다 더이상 들이킬 수 없을 만큼 마셨지만, 거나하게 취해 어지럽다기보단 몸이 풀리고 피곤한 상태였다. 로키는 반쯤 내리깐 나른한 눈으로 제 형이 불 옆에 쭈그리고 앉아 미드가르드에서 가져온 보물을 정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네 선물이다." 토르가 향이 나는 콩이 든 자루를 그에게 던지며 말했다.


로키는 자루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켰다. 눈썹이 나쁘지 않음에 치켜올랐다. "먹어 봤어? 분명 이상한 맛이 날 것 같은데."


"그럴 게야, 그건 날 것으로 먹는 게 아니거든. 콩을 갈아, 그에 끓인 물을 부어 여과한 뒤 마셔봐. 그걸 커피라고 하더구나."


로키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고마워."


다시 그들 사이에 부드러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로키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는지 정말로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조용함이었다. 토르의 얼굴에서는 의혹을 찾아볼 수 없었다. 로키에게서 등을 돌릴 때도 주저 없었다. 어둠 속에서 단검이 날아들지도 모른다는 털끝만 한 의심의 눈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정말로 그들이 형제인 것처럼 이 관계가 영원히 지속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거짓뿐이었다. 그들에게 흐르는 피는 서로 —천적인 그들에게 —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곧 토르는 그 천진함을 잃고 믿음을 그렇게 쉽게 베풀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었다.


로키는 이제 이것을 불가피한 일이라 보았다. 이런 평화를 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궁니르에 명해 제가 무슨 존재인지를 다시금 되새겼다. 침묵 속에서 외치던 그 말들이 무엇인지 전해 듣기 위해. 라우페이의 말을.


말은 차가운 손가락을 가진 것처럼 그의 목을 둘러쌌다.


(창년이었지. 내게 쾌감도 주지 못하는 질 떨어지는 년. 그런데도 그년은 네 추잡한 기형인 몸뚱이를 데려와 자식으로 받아들여 줄 것을 희망하더군. 비웃는 것 정도는 해줬지. 오, 나도 참 재밌는 농담을 하는군. 나는 비웃어 주며 그딴 식으로 내 신전을 더럽힌 그년의 목을 분질렀다.)


로키는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 거친 숨을 들이켰다. 속이 안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한쪽으로 치웠다.


토르는 그를 흘낏 보고는 쿡쿡 웃었다.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니냐? 커피 향 한번 맡아보렴. 네 분별력을 되찾는 데 도움 될 게다."


로키는 제안대로 주머니에 다시 코를 갖다 대었다. 주머니의 내용물이 터져 나올 듯이 긴장한 손으로 꽉 붙들고 있었지만, 토르의 말이 맞았다. 향은 그의 감각을 기분 좋게 자극했다, 마치 뇌에 전기 자극을 탁탁 주는 것처럼. 그를 끔찍한 생각 속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토르는 더는 웃지 않는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로키는 즉시 불 쪽으로 눈을 돌렸다. 제 형의 뚫어질 듯한 눈빛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일찍이 시프가 토르에게 말하는 것을 그가 발견했을 때, 그들은 로키를 향해 한번 눈짓했다. 그때 서서히 어두워지던 토르의 표정은 상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분명 그에게 로키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말했을 터였다.


로키는 토르와 이런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분노에 기대는 대신에 담아두기로 선택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한번 분노를 터뜨리기 시작한다면, 그 둘 다 파멸하지 않고서는 절대 멈추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이 완벽함을, 따뜻하고 편안한 제 형의 방을 떠나고 싶지 않았음에도 그는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 내렸다.


로키가 일어서기도 전에 토르는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괜찮다면, 동생아. 좀 더 있으면서 나랑 얘기 좀 하자."


"난 피곤해."


"그럼 거기서 쉬렴. 네게 보여줄 게 더 있다." 토르는 색색의 그러나 부서지기 쉬워 보이는 상자를 열고는, 이상하게 버스럭거리는 금속 재질의 한 꾸러미를 꺼내 들었다. 그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들고서는 웃음 지었다. "팝-타르트란다."


로키는 코끝을 찡긋거리며, 조롱 섞인 추측을 던져보았다. "무기로 쓸 수 있는 간식?"


"아니. 이건 아침 식사란다. 타르트가 토스터라 불리는 달궈진 금속 기구에서 말 그대로 팝하고 튀어나오지. 정말 재밌어."


어안 벙벙히, 로키는 토르가 금속 꾸러미를 열어 그 안에서 페이스트리를 꺼내 들고는 불 가까이 가져다 데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이 대단하고도 멍청한 토르가 어떻게 눈을 가릴 정도의 안도감으로 그를 쉽게 자아낼 수 있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로키 그가 오로지 몰아세우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일 때. 하지만 항상 그들 사이는 이랬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코피가 흐를 때까지 서로 몸싸움 벌인 뒤에도, 그날 밤 함께 저녁을 먹고 좀 더 음식 평가를 할 뿐이었다.


"미드가르드가 벌써 그립겠지." 로키는 눈치를 보며, 토르의 생각이 제 동생의 이상 행동보다 저 자신을 향할 수 있도록 화제를 돌려 보았다. 그가 정말로 의도한 것은 토르가 그녀를 그리워한다는 얘기였다. 제인. 하지만 토르는 로키에게 아직 그녀에 관해 얘기해 준 적이 없었으므로, 임시변통인 말이었지만.


"언젠가는 되돌아갈 거야." 토르가 말했다. "이곳의 모든 게 바로 잡히면 말이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면, 이번에는 너도 나와 함께 가자."


그 말에 로키는 다시 긴장했다. 그는 다음에 무엇이 찾아올지 알고 있었다.


"로키, 왜 미드가드르에 찾아오지 않았던 게냐? 나는 반드시 네가 올 거라 생각했어. 아무리 잠깐이지만."


"난 피곤해, 토르. 밤도 지샜고 난 너와 싸우고 싶지 않아."


"싸우려는 게 아니야." 토르가 말했다. "묻고 있는 거야. 왜 가까이하지 않았던 거냐? 난 솔직히, 네가 그리했을 때 놀랐어. 난 네가 그리웠다."


"난 여기 앉아 있잖아. 그리울 게 뭐가 있겠어."


토르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로키는 이 문제를 상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대신 형의 첫 질문에 답했다. "어쩌면 두려웠던 거겠지."


"무엇을? 네가 날 두려워할 필요 없잖아."


로키는 코웃음쳤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없애려면 내가 어떻게 해야지?" 토르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다면 내가 추측해보마. 어쩌면 넌, 네가 왕좌에 올랐단 사실에 내가 분개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겠지. 혹은 힘으로 네게서 뺏어 들지도 모른다고."


"여러 가지가 있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곧, "너 날, 별로 생각도 안 하는구나, 그렇지 않니, 동생아?"


로키는 조금 놀라 눈을 깜빡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아니야, 토르. 난 누구보다도 널 위에 두고 있어. 심지어 나보다. 나머지는 내가 속임수를 쓰기 위한 부산물이야."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니? 넌 말을 미칠 듯이 빙빙 돌리기만 하고 있잖아. 그냥 분명히 말해 줄 수는 없는 거니?"


"난 꽤 분명히 말한 것 같은데."


토르는 한숨 쉬고는 낙담에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너 지금 모순된 말뿐이야. 로키, 건강은 하니?"


"최고야."


"시프가 널 걱정해."


"그래, 뭐, 이제 너도 돌아왔으니. 추측건대, 그녀도 곧 처음 취미로 돌아가겠지."


"너 같지 않은 행동을 했다고 그녀가 말했어. 난 지금 모든 게 나와 관련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야, 로키. 하지만 정말이야? 내 말은, 내가 널 난처하게 하고 방치했기 때문이니? 난 묻고 싶어. 우리 사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아니야." 로키는 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니야, 이건 전혀 너와 관련된 게 아니야."


그리고 정말로 그랬다. 이건, 로키가 괴물로 타고난 것은 토르의 잘못이 아니었다. 토르는 제 동생의 앞에서 한 번도 거짓말한 적 없었다. 제 존재에 관해 거짓 긍지와 안정감을 불어 넣어주는 일도. 그 기초부터 깡그리 벗기어내, 잘못된 조각들을 끼워 맞추려는 미친 몸부림 외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일도 그가 하지 않았다. 토르는 로키보다 뛰어나려고 따로 노력한 적은 없었다. 그는 항상 나았다. 왜냐하면, 이 피부 아래의 존재는 확연히 달랐으니까. 시프의 말이, 토르는 비열하지 않다는 말이 맞았다. 토르는 많은 것이 될 수는 있지만, 끔찍한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또 다른 거짓말의 희생자. 자연의 이치에 따라 괴물들을 베어 죽여야 할 때, 그는 그것을 사랑하고 보호하도록 속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로키의 분노와 격노가 토르를 향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로키 저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는 죽는 게 너무나도 두려웠다. 토르는 진실이고 신이며 모든 것이었지만 로키는 아니었다. 괴물은 왕세자의 손에 죽어 마땅했다. 모든 동화가 그리 얘기했듯이.


괴물은 항상 끝에서는 죽었다. 그리고 태양이 환하게 떠오르고, 그리고 사람들이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일어나 괴물의 폐에 피와 실패로 가득 차는 것을 지켜보았다.




시간이 흘러, 로키의 끝없는 대답 회피에 토르가 지쳤을 때쯤, 그들은 벽난로 근처 자리에 함께 앉아 꾸벅 졸았다. 토르가 입으로 규칙적으로 숨 쉬었으며, 그는 항상 먼저 잠에 빠져들었다. 머리를 등 뒤 쿠션에 뉜 채, 고개는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로키를 향해 있었다.


로키는 따스함과 안정감을 느꼈지만 쉴 수는 없었다. 제 혀는, 토르가 권한 타르트의 달곰한 끈적거림으로 가득 차 둔했다. 그 타르트는 제가 오랫동안 입안에 넣어 본 것 중에 가장 조악한 것이었다. 정말로, 반죽과 죄 없고 무결한 과일로 누가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로키는 상자에 적힌 각 화학 성분의 독성에 대해 설명해 줄 때 떠오른 토르의 당혹한 표정이 떠올라 웃음 지었다. 그러나 즐거움은 한순간이었다.


"난 죽을 거야, 토르." 로키는, 제 형이 들을 수 없단 걸 알면서도, 속삭였다.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난 말하지 않을 거야. 네가 시도할 거란 걸 난 알고 있으니까. 어쨌든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야. 넌 계속 살아갈 거고, 분명 그래야만 하는 거니까. 괴물이야말로 결코 살아가는 것이어서는 안되니까."


더는 저항할 수 없어, 로키는 쿠션에 파고들어 토르의 어깨에 제 얼굴을 기대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제 형의 익숙한 체취를 들이쉬었다.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폐가 타들어 가며 내쉬어 달라며 애원할 때까지 그는 체취를 붙잡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였을 때 이후로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자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정확히 이는 침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로키는 이 같은 기분을, 어둠으로부터 단단히 꿋꿋이 보호받는 기분을 결코 잊고 싶지 않았다. 괴물들이 이곳의 저를 결코 찾지 못할 거라고 가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농담하겠는가? 그건 햇빛에서부터 숨는 꼴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르가 몸을 뒤척이다 로키의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로키는 잠에 빠져들었다.


> 11편



  1. 발췌: http://kor.theasian.asia/archives/14115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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