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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Bargaining
거래
Bargaining
written by proantagonist
translated by windmill
chapter 4
“낱낱이 얘기해.” 로키가 말했다. “어떻게 죽은 거지? 언제, 어디서? 그걸 알지 못하면 되돌릴 수 없어.”
마녀는 자기로 만든 잔에 담긴 기름진 음료를 홀짝였다. “이건 말해야겠어, 꼬마야. 이렇게 재밌는 대화를 해본 게 얼마 만인지. 정말 차 들지 않을 거야?”
왕의 서재에는 의자가 없었다. 만약 아버지신에게 말해야 할 만큼 중요한 뭔가가 있다면, 똑바로 서서 말하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방의 중앙에 위치한 거대한 황금 탁자 앞에 오딘이 서 있었고, 그의 옆엔 한 무리의 왕실 서기들이 함께했다. 이미 사람이 가득 찬 곳으로 로키와 프리가가 들어서자 그들 중 몇몇은 술렁거렸지만, 대부분은 침묵을 지키며 오딘이 두루마리 끝에 서명과 함께 직인을 찍는 것을 지켜보았다. 오딘이 서류를 서기장에게 넘기자, 머리를 조아리며 받아든 서기장은 서류를 말았다.
방은 맞갖잖게도 벌꿀 술과 치즈 냄새로 가득했고, 로키는 본분도 잊은 채 눈을 굴렸다. 그들 대부분이 술에 취해 있었다. 어쨌든, 천년 만에 열리는 이 성대한 연회는 토르의 대관식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비록, 이제는 그 어떤 축하의 의미는 아니었지만— 그랬다, 모두 엄숙에 가까운 얼굴을 했다 —, 음식과 술들을 그냥 버릴 수만은 없었다. 로키는 오히려 조심스레 트림하거나 구석에 쓰러져 코 고는 경비병의 모습을 찾을 수 없자 놀라웠다.
로키의 시선에 아버지신의 모습이 담기자, 머리를 숙이고 있는 그 모습을 그는 조금 특별한 관심을 가지며 바라봤다. 왕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피로의 구렁텅이를 흡족해하며 바라볼까 하는 충동이 동했다. 하지만 다시는 절대 아버지라 부를 리 없는 이에게 시선이 오래 머물수록, 로키가 빌려온 심장은 익숙한 아림에 굴복해갔다. 그를 배신하듯 걱정의 격통이 곧 뒤따랐다.
“아버지신이시여.” 로키의 목소리는, 숙련된 대로, 침착했다.
(괜찮으신가요?)
“로키.” 오딘은 한숨처럼 그의 이름을 내쉬었다. “지금은 아니다.”
그러자 갑자기 피로의 구렁텅이에 빠진 왕을 흡족해하며 바라보는 것이 상쾌할 정도로 정말 쉬워졌다. 로키는 유쾌하게 미소짓고는,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즐기면서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날 봐, 이 늙은이. 내 얼굴을 쳐다보라고. 당신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떨쳐낸 날 보라고.)
하지만 오딘은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서기장에게 무언갈 중얼거리고선 그들 모두에게 떠나라고 조급하게 한 손을 흔들었다. 이런 아버지신의 무언의 지시 혹은 말속의 날카로움은 좋은 징조는 절대 아니었다. 서기들이 방을 비워주며 프리가와 로키에게 짧게 절하고는 줄지어 나갔다. 프리가는 그에 정중히 답하듯 고개를 살짝 숙였지만, 로키는 오로지 오딘만을 쳐다봤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 끝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오딘은 여전히 그를 쳐다봐주지 않을 것이다.
로키의 참을성은 문이 닫힐 때까지뿐이었으며 그 직후 그는 툭 내뱉었다. “서리거인을 아스가르드로 끌어들인 사람은 접니다.”
(하지만 솔직해지자고, 아버지신. 당신이 먼저였지. 난 정말 뭐든 빨리 배우는 사람이거든.)
오딘은 경직했다. 그러곤 마침내 그는 로키가 원하던 반응을 보였다. 경청을.
그의 옆에서, 프리가가 주춤하더니 그를 쳐다보았다. 로키는 순간 그녀에게 했던 고백에 대해 그녀가 더 자세한 것을 캐물었더라면, 이렇게 모든 걸 말하도록 계속해 충고했을지 의문했다. 어쩌면 “조그마한 반역”은 가장 적절한 설명이 아닌 듯했다.
로키는 둘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미소를 억누른 채 이 순간을 음미했다. 이와 같은 순간들이야말로, 그의 인생에서 부모가 제대로 귀 기울여주는 유일한 때이며— 그가 혼란을 가져오는 유일한 때였다.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은— 저를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목표물들이 깨닫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자수한 것도 오로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오딘은 체중을 뒤로 싣고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격전지에 서 있는 것처럼 고개를 치켜들었다.
프리가가 재빠르게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오딘, 부디. 이 애의 말을 들어봅시다.” 그녀는 로키를 날카롭게 쳐다봤다. “분명 제대로 해명할 겁니다. 분명히 그래야 할 거다, 아들아.”
“제가 뭐라도 변명의 말을 올리는 것이 좋겠죠, 어머니.” 로키는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럴 마음은 없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은 토르가 아직은 왕좌에 앉기엔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껴 벌인 일이었다고. 혹은 단순히 그 찬란한 순간을 망쳐버리고 싶어서 벌인 일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슬슬 지어낸 거짓말에 넌더리가 나서 말입니다. 이제는… 지쳤거든요.”
로키는 숨을 토해냈고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깨달았다. 대체 그런 생각은 어디서?
“그럼, 무슨 이유에서냐?” 하고 오딘이 물었다. 그 물음은 조용했고, 로키는 아버지신의 이런 조용한 분노가 가장 두려운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오딘은 격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격노야말로 원하던 것에 가까웠다.
“철없는 변덕이었습니다.”라고 로키는 답했다. “눈에 띄고 싶었습니다, 주목받고 싶었습니다, 그게 아무리 잘못된 동길지라도. 그래서 제가 지금 이 사실을 말하는 거겠지요. 분노가 무관심보다 나으니까요. 저를 벌하셔야 합니다, 아버지신이시여. 토르가 아니라.”
로키는 반응이 나오길 기다렸다, 볼썽사나울 정도로 그것을 갈망했다. 오딘이 그를 책망하길 바랐다— 그 무엇이든 무관심이나 영원히 감옥에 버려져 있는 것보다 나았다. 그건 형벌이 아니었다. 그건 우블리엣이었다— 망각의 공간. 로키는 천벌을 원했다. 하다못해 채찍질이라도 그는 기꺼이 버텨냈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유가 있기에 아이를 훈계한다. 아이를 사랑하니까, 노력하면 아이를 좀 더 훌륭한 뭔가로 만들 수 있을 거라 희망하니까. 자신의 아이가 바뀔 수 있을 거라 믿으니까. 더 나은 뭔가로.
그래서 아버지신이 스켑터를 쥐고 아무 말 없이 방을 성큼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자, 로키의 심장에 비수가 꽂히는 듯 했다.
눈물이, 분노로 저를 감추기도 전에, 로키의 눈에 핑 돌았다. 고통이 거친 소릴 냈다. 굴욕적이었다. 하지만 프리가가 그의 뺨을 때렸을 때, 조금 전에 느꼈던 고통은 달콤한 것에 지나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로키는 그 충격에 멍해졌지만, 그를 더 멍하게 만든 것은 잠시 뒤 그녀가 한 포옹이었다. 뺨이 따끔거렸지만, 조금뿐이었고— 별로 뜨겁지도 않았고 — 오히려, 그가 잘못했다는 것을 이렇게 해서라도 알려주자 한심할 정도로 고마워서 무어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의 팔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어머니…”
“그만.” 그를 보기 위해 뒤로 물러난 그녀의 눈은 분노로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네게 무관심한 적도 없는데. 널 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근데 네가 어떻게. 네가 어떻게.”
그녀는 그에게서 등을 돌려 아버지신의 뒤를 쫓았고, 로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용서해주세요.”
(말은 아껴, 거짓말쟁이 씨. 조금도 미안하지 않으면서.)
(대단해— 네 어머닐 울리는 데 성공했잖아.)
(하지만 아직 부족하지, 안 그래?)
(의구심이 들었던 건 그녀의 사랑이 아니잖아. 그의 사랑이지.)
(널 그 쓸모보다 오래 살아남은 정치적 장난감으로밖에 보지 않는 놈의.)
끔찍한 마음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생각들 하나하나가 로키를 더욱더 깊고 깊은 곳으로 짓눌렀고, 그에 떠밀려 떨어질 것 같았다.
“로키.” 아버지신의 강한 목소리가 궁 전체에 퍼지며 서재를 울렸다. “오딘슨.”
소환이었다.
로키는 등을 꼿꼿이 세웠다. 턱을 치켜들었다.
아버지신을 잘못 판단했다. 징벌은 그의 예상과 달리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란이 태어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의 가장 즐거운 순간이라면, 이건 어쩌면 최악의 순간이었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걸 깨닫는다는 건 최악이었다. 돌연, 로키는 그가 너무나 멀리 되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그는 두려움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아이였다. 그 자신이 어질러 놓은 것들을 증거처럼 덕지덕지 온몸에 붙여놓은 채로, 판단과 격노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
이 세상에서 가장 최악인 동시에 가장 유쾌한 기분이었다.
격노를 느낄 만큼 신경 써주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로키는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신의 뒤를 따라 알현실로 향하며, 그가 언제 이런 마조히스트가 되었는지 의문했다.